“거기 가봤나?”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경영철학은 ‘현장경영’으로 압축된다. 신 명예회장은 신영재 전 롯데월드 대표에게 습관처럼 “롯데월드 놀이시설을 모두 타 보았느냐”, “자네가 모두 타 보고 안전 여부를 직접 검토하라”고 말할 정도로 현장을 중시했다. 롯데호텔 경비원들은 신 명예회장이 매일 한 시간 동안 서울 명동 거리를 걸으며 가판대에서 무엇을 파는지,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살폈다고 썼다.
롯데재단은 이 같은 신 명예회장의 경영철학과 리더십, 인간적 면모가 담긴 평전 <신격호의 꿈, 함께한 발자취: 롯데그룹 CEO들의 기록>(사진)을 출간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신 명예회장을 가까이서 본 롯데그룹 전직 임원 50명이 그와 함께한 다양한 일화를 담았다. 평전은 한국어, 영어, 일본어 등 3개 언어로 출간됐다. 롯데재단 관계자는 “신 명예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인간적 고찰을 바탕으로 그의 경영철학을 후대에 남기고자 했다”고 평전을 출간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동호 전 롯데호텔 부산 대표는 ‘나의 아버지 같으신 신격호 회장님’이라는 글을 통해 신 명예회장의 꼼꼼함을 소개했다. 그는 “회장님은 안전과 화재에 대해서는 특히 엄격하셔서 인화물질 관리부터 연기감지기 숫자까지 일일이 확인하셨다”며 “순찰 시에는 ‘더 단디 돌아봐라(더 철저히 확인하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신 명예회장은 호텔산업을 성장시켜 국가에 보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관광보국’ 문구를 액자로 만들어 사무실에 걸어두기도 했다.
이철우 전 롯데쇼핑 대표는 80대 중반이 된 신 명예회장에게 “이제는 좀 쉬엄쉬엄 일하시지요”라고 권했지만, 신 명예회장은 “여보게 이사장, 나는 일하는 것이 아니야. 이것은 나의 삶이야”라고 답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회장님에게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닌, 삶 그 자체였다”고 그는 전했다. 박정환 전 롯데KDD(현 롯데GRS) 대표는 TGI프라이데이를 계속 운영할지 여부를 놓고 고심할 때 신 명예회장이 “어이 박군! 1000억원(인수 비용 중 일부) 정도는 배웠다고 치자. 자네가 청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청산해”라고 단호한 결단력을 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회장님의 결단을 단순히 ‘배포’라고 표현하기에 부족했다”며 “‘단디 하라’는 말을 통해 신뢰와 기대, 책임감이 느껴졌다”고 강조했다.
롯데재단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평전의 생생함을 한층 살렸다. AI 기반 출판업체 레페토와 손잡고 신 명예회장의 흑백 사진을 컬러로 복원했다.
이번 평전 출판을 이끈 신 명예회장의 외손녀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할아버지가 워낙 겸손하셔서 이 책을 보셨다면 ‘뭐 이리 쓸데없는 짓을 했노’라고 하시면서도 속으로는 매우 기쁘게 생각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현진 기자 raral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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