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군 고위 인사들을 잇따라 숙청하고 있다. 전·현직 국방장관과 차관급 인사,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등을 막론하고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부정부패 척결을 명목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일각에선 군 장악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軍 고위 인사 2명 또 숙청
27일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제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지난 25일 유하이타오 전 육군 부사령관과 리펑청 남부전구 해군사령관의 대의원 자격을 박탈했다. 전인대는 이번 조치에 대해 어떤 혐의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법률과 규율을 위반한 혐의가 있다”고 해 부정부패 혐의임을 시사했다.
작년 로켓군 지도부의 비리가 적발된 뒤 군에 대한 반부패 숙청이 거세지고 있다. 리위차오·저우야닝 전 로켓군 사령관 등 전·현직 로켓군 고위 장성 수십 명이 조사를 받고 낙마했다. 올해 7월에는 웨이펑허·리상푸 전 국방장관이 당적 제명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인사 특혜와 뇌물수수 등의 혐의가 이유였다. 지난달에는 시 주석의 측근이자 군서열 5위인 먀오화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겸 정치사업부 주임이 부패 혐의로 숙청됐다.
숙청된 군 고위직은 공개된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달 23일 시 주석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천후이 육군 정치위원 임명 및 상장(대장) 진급식에 현역 상장 4명이 불참해 이들의 숙청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날 불참한 인사는 친수퉁 전 육군 정치위원, 리차오밍 육군 사령관, 위안화즈 해군 정치위원, 왕춘닝 무장경찰부대 사령관이다.
○심각한 국방 비리
이 같은 거센 숙청 분위기는 2010년대 중반과 외관상 닮았다. 시 주석은 전략지원군을 창설한 2015년 전후로 군 실세들을 숙청하면서 전례 없는 군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2014년에는 쉬차이허우 전 최고위 장교를 구금했고, 2015년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낸 또 다른 군부 실세 궈박슝을 구금한 뒤 2016년 뇌물 수수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어 여세를 몰아 2018년 중국 헌법을 개정했고, 중국 주석의 5년 임기 제한을 폐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일각에서는 이후 시 주석의 군 장악력이 약화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장유샤 중앙군사위 부주석은 지난 10월 시 주석이 러시아를 방문했을 당시 전군합동군사훈련을 했다. 주석이 참석하지 않은 전군합동군사훈련은 이례적이어서 배경과 관련해 갖가지 추측이 돌았다. 이런 이유로 시 주석이 2010년대처럼 사정을 명목으로 군 기강 잡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이번 숙청은 당시와는 다르다는 진단도 있다. 구자선 인천대 중국학술원 연구원은 “2010년대 숙청된 인물들은 장쩌민 전 주석이 발탁해 시 주석이 군권을 장악하기 위해 행한 조치였지만, 이번에 숙청한 인물들은 시 주석이 뽑았다”며 “권력과 관련된 정치적인 요인보다는 실제로 군 내 비리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에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은 3월 중국 로켓군 지휘부 대규모 숙청과 관련해 “서부 사막지대에 배치된 미사일의 액체연료통에 연료가 아니라 물이 채워져 있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 역시 중국군의 부패가 군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 국방부는 ‘2024년 중국 군사력 보고서’를 통해 “중국 공군은 무인항공체계의 현대화와 현지화 측면에서 미국의 수준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면서도 “중국군 고위 지도부의 만연한 부패는 군 현대화를 방해할 수 있다”고 했다.
○시진핑-군부 갈등 조짐도
중국 군 내에서는 반발의 조짐도 감지된다. 중국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지난 9일 ‘집단지도를 솔선해 견지하라’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집단지도는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최고 원칙 중 하나이자 과학적이고 민주적인 정책 결정의 중요한 보증”이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이 중요한 원칙은 중국공산당의 규칙이며, 반드시 굳게 관철하고 오래 견지해야 한다”고 썼다. 시 주석은 2018년 국가주석 3연임을 금지하는 헌법을 개정하면서 사실상 집단지도 체제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한편 시 주석의 ‘숙청 리스트’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군을 향한 숙청 작업이 최근 항공우주 분야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중국 공산당 최고 사정 기구인 중앙기율위원회는 항공우주 전문가로 꼽히는 주즈숭 상하이시 푸둥신구 서기를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한다고 발표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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