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햄릿과 돈키호테의 선택

입력 2024-12-30 17:34   수정 2024-12-31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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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비상계엄 사태는 그동안 대선 잠룡으로 꼽히던 현직 광역단체장에게도 거대한 여파를 몰고 왔다. 상식 밖이던 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열흘 만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재판 절차가 개시되면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이들 단체장은 2026년 6월 말 임기가 끝난 뒤 재임 중 성과를 앞세워 2027년 3월 대선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계엄 사태로 이 같은 계획은 무참히 어그러지고 말았다.
가시화되는 조기 대선
윤 대통령과 한배를 타고 있던 여당 소속 단체장들의 당혹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재명(더불어민주당 대표)이 되면 나라가 망하고 윤석열이 되면 나라가 혼란해질 거라고 (이미 2021년에) 예견했다”며 “윤 정권과 차별화 시점은 4년 차 때부터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일찍 와버렸다”고 토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 당 모습은 국민의 지지와 사랑을 포기한 정당처럼 보인다”며 “우리 당 소속인 대통령이 선포한 계엄, 그로부터 비롯된 국제적 신인도 하락, 경제 현장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당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 두 단체장은 향후 조기 대선 참여 여부를 놓고서는 서로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 시장은 “장이 섰는데 장돌뱅이가 장에 안 나가나”며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반면 오 시장은 “고민이 깊다. 아직 말씀드릴 시기가 아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여기에는 두 단체장의 상반된 정치 스타일과 과거사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 시장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대선 당시 불리한 정치 지형에도 불구하고 경남지사를 중도 사퇴한 뒤 여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나섰다. 특유의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언행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 빗대 ‘홍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유민주적 가치 회복하려면
반면 오 시장은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논란으로 시장직에서 사임한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다. 변호사 출신답게 치밀하고 꼼꼼한 일 처리와 마지막 순간까지 심사숙고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이반 투르게네프 작가는 에세이 <햄릿과 돈키호테>에서 인간 정신의 유형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했다. 세계적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동명 작품에서 각각 따왔다. 투르게네프에 따르면 햄릿형은 사색적인 현실주의자지만 돈키호테형은 저돌적인 이상주의자다. 투르게네프는 모든 인간이 두 유형 가운데 하나에 속해 있다고 봤다. 오 시장은 햄릿형에, 홍 시장은 돈키호테형에 좀 더 가까울 것이다.

투르게네프는 두 유형의 공통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돈키호테와 햄릿은 둘 다 자유를 궁극적 이상으로 여긴다”며 “이들 두 영웅의 이상이야말로 수백 년간 그들이 인기를 누린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르네상스 후기인 1600년대 초반 두 걸작이 거의 동시에 출간된 일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려 한 비상계엄 사태를 넘어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우리 시대의 햄릿과 돈키호테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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