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핵심 과제로 추진해온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대한 생각을 묻자 한 취재원으로부터 돌아온 답이다. 교육계 종사자이자 학부모인 그는 양가적 마음이 든다고 했다. 한국 공교육에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막상 그 과정에서 자녀의 미디어 노출도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면 도입에 선뜻 찬성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AI 교과서 도입을 두고 정부와 야당이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교육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6일 AI 디지털 교과서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건의하겠다고 하면서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약 2년간 AI 교과서 도입을 추진했다. 올해 들인 예산만 1조2797억원에 달한다. 이 부총리가 “2년간 추진한 정책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철회할 수 없다”고 말한 배경이다.
문제는 정부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정책 수요자’인 학부모를 설득하는 데 상대적으로 소홀했다는 점이다. 학부모단체들은 사고력 및 문해력 저하와 디지털 중독, 개인정보 유출 우려 등을 이유로 AI 교과서 도입에 줄곧 반대해왔다. SNS에서는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제한하는 글로벌 추세를 역행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는 육아 인플루언서의 글이 넘쳐난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학부모, 교원 총 10만6448명 중 86.6%가 AI 교과서 도입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육부는 “직접 경험해보면 여론이 달라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제품이 12월에 나온 상황에서 학부모들이 직접 AI 교과서를 체험해볼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달 중순 ‘2024 대한민국 교육 혁신 박람회’에서 이뤄진 AI 교과서 시연이 사실상 첫 ‘데뷔 무대’였다. 각종 박람회에 찾아가보지 않는 한 학부모가 AI 교과서를 체험해볼 방법은 없다.
“늘봄학교 때도 그랬다.” 야당 의원들이 학부모의 우려 목소리를 전하자 이 부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늘봄학교를 처음 도입할 때만 해도 부정적 여론이 강했지만, 제도가 정착하면서 지금은 학부모 80%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늘봄학교는 교사의 강한 반발에도 학부모에겐 호응이 좋은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AI 교과서와 차이가 있다. 결국 ‘정책 수요자’를 어떻게 설득하는지가 AI 교과서의 운명을 결정지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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