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A씨는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L씨는 미국 마이크론) 본사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에이스 엔지니어’ 출신이란 점이다. 전 직장보다 세 배 많은 연봉과 주거·교육 지원 등 파격 혜택을 약속받고 중국으로 건너간 이들 ‘엔지니어 외인부대’ 덕분에 2016년 설립된 신생 반도체업체인 CXMT가 시장 예상보다 빨리 기술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을 현상하듯이 웨이퍼에 회로를 그리는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노광) 공정 전문가를 다수 영입한 게 대표적인 예다. EUV 노광 공정은 10나노미터(㎚·1㎚=10억분의 1m) 이하 D램 개발에 반드시 필요하다.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업체 ASML과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를 거쳐 CXMT에 합류한 K씨, 인텔 다롄공장에서 ASML의 노광 장비를 다룬 L씨 등이 그런 예다. 미국의 무역제재로 중국이 ASML의 EUV 장비를 수입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CXMT가 미국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더해지자 관련 전문가를 데려와 ‘노광 공정 자립’을 준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CXMT가 최첨단 패키징 전문가를 대거 영입한다는 건 고부가가치 첨단 D램인 HBM과 3D D램에도 도전장을 내밀겠다는 의미다. CXMT에 합류한 마이크론 출신 L씨, 대만의 대표 D램 기업 난야와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글로벌파운드리에서 근무한 W씨는 HBM 개발 전문가로 꼽힌다. 설계툴 업체 케이던스와 미국 낸드플래시 기업 웨스턴디지털을 거쳐 CXMT 일본연구소에서 일하는 또 다른 W씨는 최첨단 패키징 분야 전문가다. 이들은 CXMT의 5세대 HBM(HBM3E) 개발 부서에 몸담고 있다. HBM3E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공급하는 주력 제품이다.
CXMT의 또 다른 인재 영입 전략은 ‘화교 네트워크’다. 타깃은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아시아 R&D센터에서 일한 중국계 인재다. 마이크론 및 글로벌파운드리의 싱가포르 법인과 인텔 말레이시아 법인에서 일한 중국계 엔지니어들이 무더기로 CXMT로 옮긴 게 우연이 아니란 얘기다.
생산 능력도 대폭 늘리고 있다. 내년 월간 웨이퍼 투입량을 최대 30만 장까지 늘려 현재 10% 안팎인 글로벌 D램 시장 점유율(웨이퍼 투입량 기준)을 15%까지 끌어올릴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20% 안팎인 3위 마이크론을 턱밑까지 쫓아오는 셈이다. 반도체업계에선 CXMT의 추격 속도를 감안할 때 수년 내에 마이크론을 제치고 ‘넘버3’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CXMT의 약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엔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CXMT의 물량 공세로 DDR4 가격이 지난달에만 20.5%(PC용 기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진이 좋은 DDR5도 CXMT가 판매에 들어간 만큼 비슷한 신세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정부 보조금 등 넉넉한 자금과 거대 내수시장을 보유한 CXMT가 외인부대를 통해 최신 HBM 등 첨단 기술까지 갖추면 한국 기업은 힘든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황정수/김채연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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