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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증시에서 펀드매니저가 주식을 선별해 투자하는 이른바 '액티브 운용 주식형 펀드'에서 올해 사상 최대인 4500억달러의 투자금이 빠져나갔다. 수수료가 낮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여겨지는 상장지수펀드(ETF) 등 지수추종형 투자 상품으로의 전환이 자산운용 업계를 재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0일(현지시간) 미국 펀드 정보업체 EPFR 데이터를 인용해 주식형 펀드 가운데 ‘주식 선별형’ 투자상품에서 유출된 자금이 4500억달러로 작년의 종전 최대치(4130억달러)를 뛰어넘었다고 보도했다. 빠져나간 자금은 대부분 ETF 등 패시브 투자상품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자들이 수동형 투자상품으로 갈아타는 것은 기술주 중심으로 월가 지수가 크게 상승하는 동안, 액티브 펀드들은 시장 수익률을 밑돌며 저조한 성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운용 수수료도 액티브 펀드가 비싸다. 이 때문에 고령 투자자들은 자금을 회수하고, 적금처럼 펀드를 사는 젊은 사람들도 수수료가 낮은 패시브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모닝스타 자료에 따르면, 미국 대형주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액티브 운용사의 대표 전략은 최근 1년 수익률이 20%, 지난 5년 연평균 수익률은 13%(수수료 차감 후)에 그쳤다. 같은 기간 유사한 패시브 펀드는 각각 23%, 14%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액티브 펀드의 연간 보수율은 평균 0.45%로, 벤치마크를 단순 추종하는 펀드(0.05%)에 비해 9배나 높다.
애덤 새번 모닝스타 선임 연구분석가는 “사람들은 은퇴를 위해 투자해야 하고, 언젠가는 그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며 “액티브 주식형 펀드의 투자자 저변은 고령층에 치우쳐 있는 반면, 신규 투자금은 액티브 펀드보다 인덱스 ETF로 유입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ETF열풍으로 자산운용사들의 실적도 양극화하고 있다. 프랭클린탬플턴과 T로우프라이스(T Rowe Price) 같은 미국 대형 주식 선별형 운용사와 영국의 슈로더, 애브덴(Abrdn) 등 액티브 운용사들이 부진한 데 비해 '인덱스 펀드 백화점' 블랙록은 수탁액이 늘어나고 운용 실적도 좋았다.
액티브 펀드 운용사들은 사모펀드·프라이빗 크레딧·부동산 등 비상장 자산에 투자하는 블랙스톤이나 KKR, 아폴로 같은 대체투자 사모펀드 운용사들과의 실적 격차도 컸다.
모닝스타 다이렉트에 따르면, 올해 T로우프라이스, 프랭클린 템플턴, 슈로더, 그리고 사모 형태로 운영되며 뮤추얼펀드 사업 규모가 큰 2조7000억달러 규모 운용사인 캐피털 그룹 등이 대규모 자금 유출을 겪었다. 미국 대형 기술주가 시장을 주도하면서, 이들 종목을 벤치마크보다 적게 편입하는 경향이 있는 액티브 운용사 입장에서는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 미국 증시 상승을 견인한 ‘매그니피센트 세븐’이라 불리는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구글 모회사), 아마존, 메타(페이스북 모회사), 테슬라 등은 올해 미국 증시 상승을 견인했다.
파트너스 캐피털 창립자 스탠 미란다는 “기관투자자 입장에서 몸값이 비싼 인재들로 구성된 팀을 고용해 놓으면, 이들은 모든 사람이 이미 연구하고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며 특별한 인사이트를 찾기 힘든 MS나 애플 같은 종목을 편입하기가 어려워진다"며 "결국 규모가 작고 덜 알려진 기업에 투자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대부분 ‘매그니피센트 세븐’에 비해 저평가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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