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국내 부동산 시장은 ‘상저하고’(상반기 하락·하반기 상승) 흐름을 보였다.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연초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는데, 기준금리 인하 기대와 향후 공급부족 우려 등이 겹치며 6월에 반등했다. 하지만 ‘대세 상승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대출 문턱을 한층 높이고 연말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까지 터지면서 상승 동력이 확 꺾였다.
올해도 주택가격 상승요인(공급 부족 등)과 하락요인(경기침체 등)이 혼재해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이 이어질 전망이다. 지역별 수급 여건 등을 살펴볼 때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은 집값이 오르고, 지방은 떨어지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뚜렷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경기 부진은 대표적인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내수 회복이 여전히 더딘 가운데, 수출 시장도 빨간불이 켜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인상, 국내 리더십 공백 등이 겹쳐 전반적인 국내 경기가 악화하면 당연히 부동산 시장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대출 규제도 눈여겨봐야 한다. 금융당국은 내년 하반기 모든 금융권 가계대출에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를 적용할 계획이다. 규제 여건은 좀 더 살펴봐야 한다는 평가다. 정부는 최근 전세대출을 DSR에 포함하는 방안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가계부채 관리보다 민생 안정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건설업계가 지방에만 스트레스 DSR 완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정부가 이를 들어줄지도 관건이다.
금리 향방도 최대 변수 중 하나다. 올해엔 기준금리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작년보다 내려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한국은행은 작년 하반기 두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피벗’(정책변화)을 펼쳤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금리 여건은 집값 상승요인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금리인하 시기와 폭이 예상보다 늦거나 작으면, 부동산 매수 관망심리가 나타날 순 있다.
고금리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 공사비 상승 등은 악재다. 금융권 PF 잔액은 2023년 135조6000억원에서 작년 6월 132조1000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연체율은 같은 기간 2.7%에서 3.56%로 치솟았다. 건설업계의 자금조달 여건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란 얘기다. 재건축 속도를 높이기 위한 법 개정이나 제도 보완 작업 논의가 탄핵 여파로 일시 중단된 것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반면 가구 분화, 외국인 증가 등은 주택 수요 증가 요인이다. 전반적인 집값 상승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수요 대비 공급 부족이 두드러지는 서울, 수도권과 일부 광역시는 올해 주택 가격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은 부동산 침체가 두드러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할 전망이다. 작년 10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6만5836가구)의 78.8%(5만1888가구)가 지방에 몰려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올해 주택 거래량은 작년(62만8000건)과 비슷한 수준인 62만7000건 수준으로 추정했다.
만약 탄핵이 가결돼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정책 불확실성은 더 커질 수 있다. 정권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부동산 정책의 기본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올해도 전·월세 시장 불안은 이어질 전망이다. 전셋값 등은 입주 물량과 상관관계가 깊다. 올해 전국 집들이 물량은 작년보다 27%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분양가 상승세도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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