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31일 14:5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공단 등 국내를 대표하는 투자 기관들은 푸른 뱀의 해인 을사년(乙巳年)에 해외 투자 기조를 이어간다. 어수선한 정국 속 수익성이 떨어지는 국내 투자 비중을 줄여 나갈 계획이다. 인공지능(AI) 광풍에 힘입어 안정적인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금리 하락기에 크레딧(대출), 메자닌(중순위) 투자로 눈을 돌릴 것으로 관측된다. 해외 투자가 늘어난 만큼 외환 관리도 연초 투자 수익성을 가르는 주요 과제 중 하나다.
-0.8% vs 26.5%…국내 떠나 해외 가는 연기금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 사학연금공단, 공무원연금공단은 일제히 2025년 해외 주식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해외주식 비중을 33%에서 35.9%로 2.9%포인트 높인다. 늘어나는 기금 규모로 해외주식에 약 58조원이 추가 집행될 전망이다. 사학연금이나 공무원연금도 2025년 말 해외주식 비중을 각각 2.9%포인트, 1.6%포인트 상향했다.연기금들이 해외주식 늘리기에 여념 없는 것은 국내주식보다 기대 수익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2024년 성과도 극명하게 갈린다. 지난 10월까지 총 11.3% 수익률을 거둔 국민연금은 해외주식에서 무려 26.5% 수익률을 냈다. 국내주식 수익률은 ?0.8%로 손실을 낸 것과 대조적이다. 수익성을 위해 홈 바이어스(국내 시장 편중) 현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도 해외 투자에 나서는 요인 중 하나다. 국내 증시가 세계 증시에서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약 2%에 불과해 더 적극적으로 비중 축소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다.
장기 안정 투자 위해 인프라 ‘방점’…‘AI 수요’ 맞춘다
큰손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인프라 투자 강화에 힘쓰고 있다. 인프라 투자란 항만, 터미널, 가스 파이프라인, 통신 타워 등에 자금을 집행해 수익을 얻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10~15년 만기를 가진 펀드로 투자해나가기 때문에 보수적인 투자처로 꼽힌다.연말 조직개편에서 인프라 투자를 강화한 국민연금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은 인프라투자실에 인프라솔루션팀을 추가 신설하기로 했다. 인프라솔루션팀은 인프라 세컨더리 및 대출 집행에 집중하는 팀이다. 인프라 세컨더리 투자란 이미 투자된 인프라 물건의 지분이나 대출을 사들이는 방식의 투자를 말한다. 다른 연기금, 공제회들도 인프라 투자를 강화하기 위해 채비를 하고 있다.
기관들이 인프라 투자 강화에 나서고 있는 배경엔 폭발적인 인공지능(AI) 수요도 한몫을 하고 있다. AI 성장에 따라 인프라 속성을 지닌 데이터센터 등이 급격한 성장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부펀드 한국투자공사(KIC)는 AI 수요에 연계해 스페이스X와 오픈AI에 대한 투자를 검토하고 있기도 하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사모투자 분야와 인프라 분야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 추세여서 인프라를 하나의 사모투자로 보고 투자를 하려 한다”며 “AI 수요가 넘쳐나고 있어 올해 인프라 분야에서 프로젝트 투자를 통해 기회를 창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크레딧 늘린 공제회들…금리 하락에 에쿼티 투자 검토
기관투자가는 올해도 크레딧 출자 사업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크레딧은 국민연금, 군인공제회,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처음 크레딧 부문을 신설하는 등 앞다퉈 자금을 집행했던 분야다. 크레딧 투자란 전화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상환전환우선주(RCPS), 교환사채(EB) 등에 주로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바이아웃(경영권 인수)보다 기대 수익률이 떨어지지만 J커브(초기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현상) 없이 고정된 수익을 받을 수 있어 상대적으로 하방 리스크가 적은 안전한 투자처로 여겨진다.올해 금리 인하 기조에 따라 중·후순위 채권이나 에쿼티(자본)에 대한 선별 투자도 집행될 전망이다. 특히 공제회들은 회원들에게 보장하는 급여율이 정해져 있어 높은 수익률에 대한 압박이 늘어나게 된다. 급여율이란 회원들에게 보장하는 연 복리 저축수익률로, 매년 지급해야 할 이자율에 해당한다. 공제회 급여율은 현재 연 5% 안팎으로 책정돼 있다. 선순위 채권에 투자해 연 6% 이상 투자 수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앞으로 금리 하락과 함께 선순위 채권 수익성이 떨어져 중·후순위 채권에 선별적으로 투자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 나온다.
더 공격적으로 출자를 검토하는 기관도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메자닌 펀드 대신 바이아웃 펀드에 2000억원 안팎의 출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리 하락이 이어지면 바이아웃 투자도 더 활성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양래 과학기술인공제회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금리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공제회들은 다시 메자닌 대출에 대한 투자가 늘릴 것으로 본다”며 “지난해 어렵지 않게 투자 수익을 내오던 시기였다면 신년엔 새로운 각오를 갖고 투자에 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진 해외 투자에 외환 관리 ‘집중 모드’
외환 리스크 관리도 기관들의 투자 모니터링 요인 중 하나다. 해외 투자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환율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어 투자 수익률 저하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은 상태다. 자칫 환율이 하락하게 되면 해외 투자 수익률이 나빠지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돼서다. 국민연금은 높아진 환율 리스크에 따라 연초 전략적 환헤지를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적 환헤지란 국민연금의 모든 해외 자산에 환헤지 비율을 0%에서 시장 상황에 따라 10%까지 높이는 방식을 뜻한다. 국민연금 해외 자산의 10%는 485억 달러(약 70조원)에 달한다. 전략적 환헤지를 실시하게 되면 원·달러 환율 1470원선에서 하락에 베팅해 투자 수익률을 높이게 된다. 다른 기관들도 외환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허장 행정공제회 CIO는 “환매가 없는 연금과 달리 공제회는 회원들이 이탈할 수 있어 성과 변동성에 민감하다”며 “이머징(신흥국) 통화가 추세적 약세로 가고 있어 신년에 환헤지 관리를 어느 때보다 집중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병화 기자 hwahw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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