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의 한 약국은 최근 비타민 약제 매출이 평년 겨울보다 30%가량 늘었다. 과일 값이 크게 올라 과일을 사먹는 대신 영양제로 비타민을 보충하려는 소비자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 약국의 박모 약사(31)는 “손님들에게 영양제에만 의존하지 말고 제철 과일 많이 드시라고 종종 말하는데 열이면 열 '요즘 과일이 너무 비싸서 비타민 사먹는 게 훨씬 싸다'고 하더라. 올 겨울 과일 값이 뛰면서 유독 비타민 영양제 매출이 늘었다”고 귀띔했다.
최근 과일 값이 크게 오르면서 나타난 현상. 일반 소비자들이 과일 대체재를 찾을 정도로 올해 겨울 제철 과일인 감귤과 딸기 가격은 많이 올랐다. 재배 면적 감소와 올여름 폭염으로 생산량이 줄어든 여파다.
겨울 과일을 대표하는 노지감귤 역시 10개 가격이 4459원으로 1년 전(3853원)보다는 15.7%, 평년(2901원)보다 53.7% 비싸다. 다른 과채류 값도 많이 올라 방울토마토(30.8%) 배(21.7%) 토마토(20.4%) 등의 가격이 평년보다 높은 수준이다.
서울 청량리 청과물 시장에서 2대째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박경기 씨(30)는 “설향 딸기 1kg가 작년에는 2만2000원대였는데 올해는 2만5000원씩 한다”면서 “시세대로라면 최소 2만8000원은 받아야 하는데 손님들이 가격 비싸다며 안 사가니 울며 겨자먹기로 값을 낮춰 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 겨울 과일값 급등의 주요 원인은 이상기후다. 지난해 10월 초까지 폭염 수준의 이상고온 현상이 이어지면서 딸기 정식(모종을 밭에 옮겨 심는 것) 시기가 늦춰지고 초기 생육도 지연된 탓에 출하량이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감귤도 주 재배지인 제주에서 올 여름 폭염과 열대야로 인한 열과(과일이 갈라지거나 터지는 현상) 피해가 확산해 겨울철 생산량을 떨어뜨렸다.
충북 청주에서 딸기 농사를 짓는 김용규 씨(69)는 “올해 딸기 농사 짓기가 너무 힘들었다”며 “역대급 폭염에 병묘가 속출한 데다 딸기 묘목 자체도 제대로 자라지 않아 뽑았다가 심기를 여러번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품질도 들쑥날쑥하고 생산량도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높아진 과일 값에 대응하기 위해 유통사들은 추가로 산지를 확보하는 등 조치에 나섰다. 열과 피해 등으로 조생종 감귤 출하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자 대형마트들은 가을부터 수시로 제주의 실제 상황을 확인하며 사전 계약 재배와 저장 물량 확보에 나섰다. 이커머스 업체 쿠팡도 딸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충남 논산, 경남 진주 등 기존 5곳의 매입 지역에 최근 전남 영암, 경남 밀양, 경북 상주 등을 추가해 10개 지역으로 늘렸다.
다만 정부는 이달 들어 딸기나 귤 등 제철 과일 수급이 늘어나면 채소류 가격이 잡힐 것으로 보고 있다. 출하량이 늘고 지난해 수준 이상 생산량을 회복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딸기 정식(의향) 면적은 전년 대비 1.4% 증가한 것으로 조사돼 지난해 12월 출하 면적도 1.4%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과일값 등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생육관리협의체를 중심으로 생육 상황을 점검하고 기술 지도를 확대하는 등 공급 안정화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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