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을사년(乙巳年)을 상징하는 동물은 푸른 뱀이다. 뱀만큼 사람들의 이미지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동물은 없다. 뱀이 품고 있는 치명적인 독은 공포를, 혀를 날름거리며 기다란 몸뚱이로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모습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반면 뱀을 영물로 취급하는 인식도 의외로 많다. 뱀이 휘감긴 지팡이(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서양에서 의학의 상징물로 쓰이고, 중국 신화에서 인류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가 사람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다는 점, 성경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한 게 단적인 예다.
이런 극과 극의 이미지는 뱀을 바라보는 농경 민족과 유목 민족의 대조적인 시각에서 비롯됐다. 건조한 지역에 서식하는 뱀 중에서는 독이 없는 뱀보다 독사 비중이 높은 편이다. 사람과 가축을 죽이는 뱀은 유목 민족에게 증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반면 농경 민족 입장에서는 식량을 갉아먹고 병을 옮기는 쥐를 잡아먹는 뱀이 긍정적으로 여겨졌다. 이런 문화에서는 땅을 기어다니는 뱀을 대지와 생명력의 상징으로 볼 때가 많았다. 겨울잠을 자기 위해 사라졌다가 이듬해 나타나고, 때가 되면 허물을 벗는 모습 때문에 불사(不死)와 재생(再生)의 상징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농경사회 전통이 있는 한국에서도 뱀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본다. 특히 구렁이는 집안의 재물을 관장하는 업신(業神)으로 모셔졌다. 집에 있으면 절대 쫓아내지 않았고, 집의 주인으로 대접했다. 반면 집안에서 큰 뱀이 담장을 벗어나면 망조가 들어 그 집안의 운수와 가옥의 수명이 다 된 것으로 생각했다. 윤흥길의 소설 <장마> 등 여러 문학 작품에 이런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 100년간의 기다림 끝에 용이 돼 승천하는 이무기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기다리는 인내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올해 전망은 결코 밝다고 볼 수 없다. 온갖 불확실성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가득해서다. 뱀과 같은 지혜와 인내를 무기로 삼아 위기에서 기회를 찾아내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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