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어떤 미래를 꿈꾸는가. 2025년 새해 벽두, 우리 앞에 놓인 절체절명의 질문이다. 지금 한국은 난파 직전의 위태로운 신세다. 영국 옥스퍼드-HMG 미래연구센터를 이끄는 라파엘 라미레스 센터장(교수)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의 상황을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압축 성장의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12·3 계엄 사태’와 잇따른 탄핵 정국은 해방 후 80년 동안 쌓아 온 민주주의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 노출했다. 한 헌법학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선거제도, 타협과 조정 없는 정치적 양극화, 포퓰리즘에 기반한 대결 구조 등 현행 한국 헌법과 정치 시스템의 모순이 이번 탄핵 정국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구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달러를 넘어선 초일류 국가로 도약하려던 대한민국의 꿈은 좌초 위기에 놓였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의 성장에 보호막 역할을 한 냉전과 다자무역은 각각 열전과 자국 우선주의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며 “지금까지의 성공 방정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개념 설계’를 하면, 한국은 이를 가져와 가성비 상품을 제조해 팔던 방식의 시효가 만료됐다는 의미다.
미국의 ‘혁신 독점’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영국 등 유럽 선진국조차 ‘세계의 박물관’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고조될 정도다. 라미레스 센터장은 “전 세계의 혁신 아이디어가 거의 모두 미국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투자정보 업체 프레킨에 따르면 작년까지 10년간 주요 7개국(G7)에서 모집된 벤처캐피털 자금의 83%가 미국에 쏠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는 관세장벽을 무기로 제조 설계까지 ‘메이드 인 USA’를 강요하고 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의 과학·기술 클러스터를 이끄는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는 “트럼프 2기 정부가 그리는 새로운 퍼즐 속에서 한국은 대체 가능한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의 첨단 산업 경쟁력 역시 한국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세계 제조업 비중은 31.6%에 달했다. 미국(15.9%)의 두 배다. 이정동 교수는 “중국이 미국처럼 스스로 개념 설계를 하고 있다는 게 두려운 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중국의 경제 속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중국은 전 산업에 걸쳐 자체 공급망을 갖추고 있는데 한국의 뿌리산업은 중국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액정표시장치(LCD)만 해도 한국산은 ‘제로’다. 2025년은 이처럼 내부 모순과 외부의 급변이라는 두 개 단층대가 부딪치는 대충돌의 서막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 등 9명의 교수진은 ‘한국의 과거 50년, 미래 50년’이라는 연구 보고서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변하지 않으면 선거만 남은 민주주의, 승자독식의 균열사회, 해방 이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굴레를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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