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가는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

입력 2025-01-12 10:25   수정 2025-01-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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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인사이트]


팬데믹과 전쟁의 영향으로 극심했던 공급망 차질은 대부분 완화되었고 물가도 꾸준하게 하락하면서 안정되는 흐름이다. 뉴욕 연준에서 발표하는 ‘글로벌 공급망 압력 지수(Global Supply Chain Pressure Index, GSCPI)’는 주요 글로벌 운송 비용과 구매관리자 설문 등을 토대로 매월 집계되는데 2021년 말을 정점으로 완화되기 시작해 2023년 초부터는 완연한 안정세로 접어든 모습이다.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고 고용과 소비 지표가 둔화되기 시작하면서 2024년 9월 미국 중앙은행(Fed)은 5.25~5.50%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지 13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했다. 2024년 11월 기준 주요 투자은행들의 미국의 소비자물가(CPI) 상승률 전망치는 2024년 말 2.6%, 2025년 말 2.3% 수준이다. 여전히 물가안정 목표 2.0%보다 높은 상태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시작된 셈이다. 공급망 차질은 해소되었지만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은 쌓여가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팬데믹 이전보다 한 단계 높아진 수준에서 균형점이 형성될 것으로 전망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팬데믹 이후 인플레이션이 한 단계 높아진 배경과 향후 나타날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상승 요인들을 살펴보자.

첫째, 탈세계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대규모 투자가 인플레이션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전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첨단산업과 핵심설비, 인력을 내재화하는 ‘재산업화(reindustrialization)’ 과정에서 비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2018년 이후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무역분쟁 등으로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신흥국으로 생산을 외주화한 결정이 조달 비용과 공급망의 안정성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미국과 중국의 공급망이 블록화되고 호환성이 낮아지면서 기존 공급망의 효율은 낮아지고 비용은 높아졌다. 인도와 베트남은 중국을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미국 정부는 국내 투자를 늘리기 위해 투자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 진행되는 투자는 대체로 ‘수요가 강해서, 또는 수요가 강해질 것’이라는 경기 사이클 측면에서의 전망을 바탕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팬데믹 동안 경험한 공급망 불안이 미·중 디커플링과 결합되면서 자국 또는 우방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투자 의사 결정이다.

결국 비용이 낮은 해외에 생산 시설을 구축하는 오프쇼어링(offshoring)이 마무리되고 해외 이전 생산시설을 다시 자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reshoring)과 신뢰가 쌓인 나라들 안에서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그리고 인접국에 구축하는 니어쇼어링(near-shoring)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가장 효율적으로 구축했던 기존의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가까이 있는 더 비싼 노동력, 비싼 원자재와 중간재가 투입되면서 비효율을 높이고 비용은 상승한다.

둘째, 팬데믹을 거치면서 임금 상승과 복지 확대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팬데믹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임금과 복지정책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의 초기 자본주의는 인플레이션을 제어하는 자정 작용이 존재했다. 물가가 상승하면 높아진 물가만큼 수요가 감소하면서 물가가 다시 낮아졌다. 물가상승→ 수요감소→ 물가하락→ 수요증가→ 물가상승이 반복되면서 인플레이션의 변동성이 컸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Fed와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본주의는 점차 ‘경기침체에 강한 자본주의’로 변했다.

특히 현대 복지정책을 확립한 계기가 된 1960년대 말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 (Great Society)’ 정책에서 추진된 사회보장, 실업급여, 노동계약 등의 복지정책은 사람들에게 물가가 상승하더라도 최소한의 수요 하단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이는 디플레이션을 차단하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취약성을 증가시켰다. 사람들은 복지가 강화될수록 오히려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경향을 보인다. ‘위대한 사회’ 정책이나 팬데믹 이후 고령층의 조기은퇴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는 타이트한 노동공급과 비용 상승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높인다.

셋째, 고령화와 기대수명 증가에 따른 부양비율 상승과 생산가능인구 감소도 추세적인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부양비율(The dependency ratio)’은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부담해야 할 노년층(65세 이상)과 유소년층(0~14세) 부양가족 수를 측정한 수치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노년층이나 유소년층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 즉 ‘부양비율’이 추세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선진국에서는 부양비율이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고 신흥국에서는 하락 흐름이 멈추고 횡보하기 시작했다.

부양비율이 상승하면 저축이 줄고 소비가 늘어난다. 특히 치매 등 간병에 의존하는 고령자가 늘어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노후를 위해 저축하던 사람들은 은퇴하면서 저축을 소비한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면 생산보다 소비가 더 증가한다. 생산하는 사람보다 생산하지 않고 소비하는 피부양자(노년층, 유소년층)가 늘어나면 인플레이션은 상승 압력을 받는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잠재성장률과 인플레이션을 낮춰 금리를 하락시키는 요인이자 뉴노멀 시대의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를 이끄는 핵심 배경 중 하나였다. 그동안 선진국은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주는 물가상승 압력이 존재했으나 해외 공장 이전과 신흥국의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이 주는 물가하락 압력이 이를 압도했고 전 세계적으로는 저물가가 유지되었다.

그러나 노후를 대비하며 저축하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고 노년층으로 편입되어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인구구조 변화는 인플레이션 상승 요인으로 반전되었다. 미국은 2008년을 전후하여, 우리나라는 2013년을 전후하여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됐다. 탈세계화가 시작되었고 저임금 노동력의 상징이던 중국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감소할수록 인플레이션은 추세적으로 상승 압력을 받을 것이다.

선진국은 2005년을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막대한 저임금 노동력을 제공했던 중국은 2010년을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 중이다.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약 30년 뒤인 2055년을 기점으로는 일본보다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의 생산가능인구는 2028년을 정점으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생산가능인구 감소의 충격에 대한 대응은 일본과 독일, 미국이 달랐다. 일본은 고용 연장과 여성 고용 확대 등으로 대응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고 독일과 미국은 이민을 늘려 인구 감소의 충격을 적절히 방어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장기적으로 노동공급이 타이트해지면 노동자들의 임금 협상력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이다. 소득이 늘어난 것 같지만 물가상승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노동자들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임금의 인상을 원할 것이다. 역시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요인이다. 그리고 향후 노동자들의 영향력이 확대되면 인적자본보다 금융자산에 대한 과세가 증가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융투자소득세 논의도 거시경제적으로는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인플레이션이 성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공지능(AI) 등 기술혁신에 의한 생산성 향상으로 일부 상쇄될 수 있다. 기업들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자본에 대한 투자를 늘릴 것이다. 결국 생산과 저축보다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면서 추세적으로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신동준 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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