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는 다사다난이라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뒤죽박죽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바라던,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다시 요원해졌습니다. 중대재해법과 주 52시간제 완화가 불발되고 인공지능(AI) 시대를 떠받칠 반도체·전력망 특별법도 끝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연금·교육·세제 분야의 구조개혁도 멈췄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거대 야당의 몽니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요령부득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직은 우리 정치와 국민 의식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트럼프·푸틴·김정은발 외풍은 더욱 거세질 듯합니다. 국가 전체가 대내외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마도 전 세계 지도자 가운데 한국 대통령이 트럼프를 가장 마지막으로 만날 것 같습니다. 이미 트럼프발 신국제질서가 굳어진 뒤겠죠.
이제 믿을 언덕은 기업인밖에 없습니다. 기업 간 경쟁이 국가 간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험악한 시대에 여러분만 덜렁 글로벌 전장에 밀어 넣게 됐습니다. 미안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그동안 국민들은 기업인들의 노고를 자주 잊고 살았습니다. 지금 누리는 삶의 질을 당연하게 느끼면서도 정작 누구 덕분인지는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사농공상의 인습 탓일까요. 규제기관의 위세와 발호는 여전히 거칠고 유난스럽습니다. 같은 정부 내에서도 경제부처와 규제기관 간 손발이 맞지 않습니다. 업계의 자율적 설비 감축도 공정거래위원회의 담합 규제 칼날을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정부 주도의 불황 카르텔은 일본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나라 정부들이 앞다퉈 해주는 첨단산업 지원책에도 특혜 논란이 껌딱지처럼 붙어 다닙니다. 곳곳에서 ‘죄수의 딜레마’가 여러분을 옭아매고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기업은 국가의 영웅입니다. 국부의 원천입니다. 많은 국민을 가난으로부터 구제하고 경제와 산업을 발전시켰습니다. 영웅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영웅은 남보다 선도적이고 희생적인 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전사한 군인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전사자는 후대에 깊은 교훈과 정신적 유산을 남깁니다. 내가 목숨을 바쳐 지킨 나라를 당신들도 잘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경제·안보 융합시대에 기업인은 전쟁터의 군인과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기업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곧 애국이고 보국입니다. 기업인들은 위험을 피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남긴 선도력과 자기희생은 전체 공동체의 생명력을 담보하는 핵심 정신입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기업가정신을 보호하는 나라는 번영했지만, 외면하는 나라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공한 기업과 기업인에게만 경의를 표하지 않습니다.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개척하는 기업인도 존경합니다. 열사와 극지의 수출 현장을 누비는 수만 개의 무명 기업은 더 큰 자랑입니다. 무려 10만 개입니다. 삼성전자도 그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그렇게 꾸려진 거대 기업 군단이 오늘날의 번영을 만들었습니다. 아직 우리는 강건합니다. 세계 최고의 제조업 포트폴리오에 원자력 바이오 방산을 얹었습니다. 조선업은 사상 최대 호황을 앞두고 있습니다. AI용 메모리와 수소자동차 세계 1위도 한국입니다.
이제 새해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다시 뛰어 주십시오. 폭풍 속으로, 포연 자욱한 전장터로 들어가 주십시오. 올해 전쟁은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고 중요합니다. 대한민국의 국격, 한국인의 자부심,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모두 달려 있습니다. 숨 가쁜 도전과 치열한 경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쉽고 안전한 길, 보장된 미래는 없습니다. 미국 빅테크와 중국의 인해전술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실패와 좌절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모두가 여러분의 도전과 희생으로부터 과분한 은혜를 입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항상 여러분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