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잔혹하고 확장됐으며 극한의 몰입감을 선사한다.”(미국 매체 버라이어티)
“빨간불이 켜졌다. 보다 스타일리시한 살육을 보여 주지만 이야기는 정체되어 있다.”(미국 매체 뉴욕타임스)
세계는 지금 한 드라마 얘기로 떠들썩하다. 지난 12월 2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시즌2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다. 동일한 작품이지만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시즌1과 비교하여 좋은 점,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시시각각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시즌2는 실망스러운 작품일까, 아니면 성공작일까.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평가 내용을 떠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시즌2 역시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유례없는 높은 화제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2021년 시즌1이 나온 이후 많은 사람들이 시즌2의 탄생을 줄곧 기다려 왔다. 심지어 시즌2가 공개되기 전에 이례적으로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 최우수 TV 드라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덕분에 시즌2가 나오자마자 전 세계 사람들이 곳곳에서 “오징어 게임 시즌2 봤냐”라고 동시다발적으로 얘기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개 직후 93개국에서 1위에 오른 것은 그 폭발적인 관심을 보여준다. 그렇게 ‘오징어 게임’은 K콘텐츠, 나아가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 길이 남을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기록과 산업적 의미를 살펴보기 전 시즌2의 평가가 엇갈리게 된 배경에 대해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가장 큰 요인엔 ‘두 번째 이야기’라는 태생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시즌1은 게임을 소재로 계급 불평등, 자본주의적 착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내세워 파격적이고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반면 시즌2는 시즌1과는 엄연히 역할이 다르다. 시즌1의 콘셉트를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시즌3로 넘어가는 가교 역할을 해야만 한다. 그중 시즌2의 1, 2화는 전작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회차에 해당한다. 전작에서 이미 끝나버린 게임을 다시 시즌2로 펼쳐 보이는 이유, 게임의 우승자 성기훈(이정재 분)이 또 한번 게임에 참여하는 명분을 시청자에게 설득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7화에선 시즌3로 넘어가기 전 게임을 멈추게 하려는 기훈의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며 마무리된다. 이 때문에 시즌2에선 시원하고 통쾌한 게임의 결말이 다뤄지지 않는다. 게임 재시작의 과정, 잘못된 게임 시스템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주인공의 노력과 좌절에 필연적으로 집중하고 있다. 시즌1, 3에 비해 훨씬 속도가 느리게 느껴지고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쉬운 점들도 보인다. 시즌3까지 이야기를 연결하려다 보니 캐릭터가 지나치게 확장됐다. 시즌1에 나온 기훈과 프론트맨(이병헌 분)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여러 캐릭터가 추가됐다. 이에 따라 인기 배우인 공유, 임시완, 강하늘, 위하준, 박규영, 이진욱, 박성훈, 양동근, 조유리 등을 한 작품에서 모두 만날 수 있어 보는 즐거움이 크다. 하지만 문제는 이 캐릭터들의 사연을 하나씩 풀기 시작하니 이야기가 방대하고 산만해졌다는 점이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정리가 되어가긴 하지만 초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주요 캐릭터가 많아진 탓인지 각 인물의 매력도도 시즌1에 비해 부족한 편이다.
캐릭터 등장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게임’은 정작 늦게 시작된다. 1화에서 딱지맨(공유 분)과 성기훈이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긴 한다. 하지만 이 게임은 작품의 본 게임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러시안룰렛 게임은 다수의 해외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나왔다 보니 참신함이 떨어진다. 게임에 대한 집중도도 전작에 비해 부족하다. 시즌1에선 9부작에 6개의 게임이 들어가 있었다. 반면 시즌2는 7부작에서 3개의 게임을 진행하는 데 그쳤다. 그중에서도 1, 2, 7화엔 본 게임 내용이 들어가 있지 않았으므로 사실상 4회차 분량 안에서만 게임을 한 셈이다. 흥미진진한 게임을 기대한 시청자들 입장에선 다소 김이 샐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아쉬운 점에도 시즌2는 분명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시즌2에서 감독은 시즌1과는 다른 새로운 설정과 메시지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를 통해 시즌3에서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이다.
시즌2에서 가장 부각되는 설정은 시즌1에 없었던 O, X 투표이다. 단계별로 게임이 진행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는 것은 시즌1과 동일하다. 대신 시즌2에선 각 단계에서 생존하게 된 참가자들이 게임을 더 진행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는 사람들이 눈앞에서 무자비하게 죽어가고 자신조차 게임을 하다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게임 중단을 원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게임을 더 해서 보다 많은 돈을 차지하려는 욕망이 한 켠에선 자라나게 된다. 민주주의적인 찬반 투표 형식을 띠고는 있지만 여러 사람의 공포와 욕망이 충돌하며 급기야 살육까지 일어나게 된다. 감독은 단순한 O, X 투표만으로도 현대사회의 민낯과 현대인의 끝없는 욕망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다.
시즌1에 비해 강화된 ‘관계성’도 눈여겨봐야 한다. 게임을 중단시키려는 기훈과 그와 뜻을 같이하며 돕는 친구 정배(이서환 분), 도박 빚을 지고 게임을 하게 된 아들 용식(양동근 분)과 그 아들을 위해 게임에 참여한 어머니 금자(강애심 분), 코인 투자자 명기(임시완 분)와 그의 아이를 가진 전 여자친구 준희(조유리 분) 등이 대표적이다. 만약 이 게임이 중단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1명의 승리자 이외엔 다 죽게 된다. 그런 만큼 이 관계성은 살벌한 게임 속에서도 서로를 돕는 따뜻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때론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한다.
덕분에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공개 직후 93개국에서 1위에 오른 기록 자체도 시즌1에 비해 훨씬 빠르다. 시즌1은 공개 후 8일이 지나 66개국에서 1위를 차지했었다. 시즌1이 지금보단 K콘텐츠에 대한 인지도와 신뢰도가 약했던 시기에 입소문으로 1위에 올랐다면 시즌2는 시즌1 흥행에 따른 폭발적인 기대감으로 더욱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전작의 총 시청 시간에 버금가는 기록이 나올 수도 있다. 시즌1은 첫 28일 동안 총 시청 시간 18만 년을 달성했다. 시즌2가 이 기록을 깰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좋은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시즌2의 공개 직후 일주일간 시청 시간은 4억8760만 시간으로 전작 4억4873만 시간에 비해 많다.
시즌2 흥행을 타고 K놀이 열풍도 다시 불고 있다. 전작에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등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었다. 이번엔 시즌2의 두 번째 게임에 해당하는 ‘공기 놀이’ 등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좋은 콘텐츠의 요건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해당 작품은 참신한 아이디와 설정, 날카롭고 통렬한 시선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콘텐츠의 핵심 요건인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시즌1에서 게임의 기획자였던 오일남(오영수 분)은 쓰러진 노숙자를 그냥 지나쳐 가는 남성을 창문 밖으로 바라보며 기훈에게 이렇게 묻는다. “자네는 아직도 사람을 믿나?” 그러나 일남의 예상과 달리 노숙자를 버리고 간 줄 알았던 남성은 경찰과 함께 나타나 그를 구조한다. 일남이 그랬듯 시즌2에서도 프론트맨은 영웅 놀이를 하는 기훈을 비웃는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욕망과 탐욕이 들끓는 현대사회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키려 끝까지 노력하는 사람이 곧 영웅이란 사실을. 그리고 어딘가엔 반드시 영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기훈의 끊임없는 의지와 도전을 그린 ‘오징어 게임’ 시즌2는 메가 히트작인 동시에 좋은 콘텐츠라 할 수 있다. 새해 어느 즈음에 공개될 시즌3는 그 찬란한 대미를 장식하며 K콘텐츠 역사상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김희경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영화평론가 kimhk@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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