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무너진 20년 ‘LCC 안전 신화’

입력 2025-01-04 09:15   수정 2025-01-0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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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2024년의 마지막 일요일인 12월 29일 오전 9시께 탑승객 181명을 태운 태국 방콕발 제주항공 항공기가 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하던 중 추락했다. 대참사였다. 탑승객 179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구조된 인원은 승무원 단 두 명에 불과했다. 갑작스레 발생한 대형 사고에 국민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

고인들을 위해 서울시청 앞에 마련한 합동분향소엔 이들을 기리기 위한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방송사 및 지자체들도 예정됐던 연말연초 행사를 대부분 취소했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 정부는 사고가 난 날부터 1월 4일까지를 국가애도 기간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제주항공 참사’ 후폭풍도 거셀 전망이다. 특히 이번 사고로 그간 LCC들이 강조해왔던 ‘안전 신화’가 무너져 버렸다.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LCC 업체들은 국내에서 첫 출항(2005년)한 뒤 약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인명사고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소비자들도 이를 믿고 LCC에 몸을 맡겼다.

불시에 터진 이번 참사로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LCC 포비아(공포)’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향후 제주항공과 같은 중 저비용항공사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사고 이후 주요 LCC들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사고 원인 조사 최대 3년
정부와 제주항공은 이번 참사의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 사고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현재 제주항공 참사 사고 원인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무안공항의 위치 및 활주로 설계 방식이다.

제주항공 참사 피해 규모를 키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무안국제공항에 설치된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과 이를 지지하기 위해 지상으로 돌출된 형태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구조물(둔덕)이다. 무안공항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여객기의 착륙을 돕는 역할을 하는 안테나인 로컬라이저와 콘크리트 둔덕은 공항 활주로 끝에서 250m가량 떨어진 비활주로에 설치됐다. 사고 당시 영상을 보면 제주항공 여객기는 동체 착륙 후 활주로 1600m 정도를 질주한 뒤 로컬라이저·둔덕과 외벽을 연이어 충돌하며 폭발했다.

이번 사고는 해외에서도 긴급 속보로 전할 만큼 큰 이슈였는데 영국 스카이뉴스에 출연한 한 항공전문가는 “비행기는 활주로를 미끄러지며 이탈했는데 이때까지도 기체 손상은 거의 없었다”며 “승객들은 활주로 끝을 조금 벗어난 곳에 있던 견고한 구조물에 부딪혀 사망했다. 활주로에는 그런 단단한 구조물이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내에서도 인천국제공항 등 다른 공항에는 이런 형태의 콘크리트 지지물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며 애초부터 공항 활주로 설계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부는 해당 시설이 사고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와 함께 조사 중이다.

공항 운영 시스템이 미흡했던 것도 사고를 키운 배경으로 지목된다. 무안공항이 자리한 위치가 철새 도래지로 알려지면서다. 생존한 승무원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조류가 여객기와 충돌하면서 시작됐다. 조류가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폭발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기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무안공항은 약 20일 전에 국제선 취항을 개시했는데 사실 이를 놓고 말이 많았다. 버드스트라이크 위험이 높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토부 항공 정보통합 관리시스템에 따르면 2015년 발간된 항공정보간행물에도 무안공항 주변 해안과 습지에 검은부리까치, 꿩 등 텃새와 청둥오리, 왜가리 등 철새가 서식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안공항에는 조류 충돌 예방 인력이 단 4명뿐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포공항(23명), 제주공항(20명), 청주공항(8명), 대구공항(8명)과 비교해도 적은 숫자다.

사고 당일엔 이 중 두 명만 근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도 “조류 충돌 예방 활동과 대응 체계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며 이를 문제 삼았다.
주요 LCC 주가도 하락
다만 버드스트라이킹은 현재 논란의 소재이기도 하다. 해외의 여러 항공 전문가들이 조류 충돌과 이번 사고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어서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의 파일럿 크리스티안 베케르트는 “랜딩기어는 독립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며 “조류 충돌이 발생해도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는 상황은 매우 드문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 외에도 많은 파일럿이 “조류 충돌만으로 랜딩기어, 플랩, 엔진 역추진 장치 모두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설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도 미국 연방항공청(FAA) 보고서를 인용해 “조류 충돌은 빈번히 발생하지만 이런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데 최소 6개월에서 최대 3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밝힌 가운데 이번 사고로 소비자들의 LCC에 대한 불신도 높아지고 있어 업계도 비상이다.

특히 이번 사고가 난 다음 날 또다시 제주항공 여객기에서 랜딩기어 문제로 회항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 LCC 업계 관계자는 “여행을 계획했던 이들이 탑승 항공기가 사고가 난 항공기와 동일 기종인지 묻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제주항공에서 문제가 된 두 기체는 모두 보잉 B737-800 항공기인데 대부분의 국내 LCC들이 이 기종을 보유한 상황이다. 항공사에 기종을 확인한 뒤 여행을 취소하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B737-800의 경우 국내 항공사가 운영하는 101대 중 99대를 LCC가 보유하고 있다. 제주항공(39대)을 비롯해 티웨이항공(27대), 진에어(19대), 이스타항공(10대) 등도 이 기종을 보유하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지난 12월 29일 오전 0시부터 30일 오후 1시까지 국내선과 국제선 항공권 취소 건수가 약 6만8000건으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게다가 이번 사고로 LCC의 정비인력 부족에 대한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여객기 1대당 월평균 운항 시간의 경우 제주항공(418시간), 티웨이항공(386시간), 진에어(371시간) 등이 FSC인 대한항공(335시간)과 아시아나항공(355시간)보다 더 길었다.

그러나 LCC 업체들의 항공기 1대당 정비사는 대한항공(16.5명)과 아시아나항공(16명)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가 난 제주항공은 11.1명이며 티웨이항공 10.4명, 진에어 10명 등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LCC를 찾는 여행객이 당분간 크게 감소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LCC 업계 관계자는 “그간 인명사고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LCC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을 해소했는데 이번 사고로 다시 LCC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질까 봐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사고 직후 주요 LCC들의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하는 등 LCC 포비아가 현실화할 수 있음을 예고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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