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형을 암으로 떠나보내고 인생의 항로를 바꾼 저자 패트릭 브링리(사진)의 에세이다. ‘뉴요커’ 잡지사에서 일하며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걸어온 야심만만한 젊은이 브링리는 의지하던 형의 투병과 죽음을 겪으며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기로 마음먹는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그저 놓아두기 위해서.
렘브란트, 보티첼리, 모네, 고흐, 드가… 거장이 그린 수백 점의 그림 속에 둘러싸여 일하기를 10년. 그는 문득 깨달았다.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하고 도망치고 싶었던 과거와 달리, 여전히 살아야 할 삶이 있고 그 방향키는 스스로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때때로 인생은 우리에게 폭군처럼 무자비하게 굴지만, 멈추지 않고 세상은 계속해서 돌아간다. 브링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치유란 단어가 성급하게 느껴질 만큼 상실의 무게가 무겁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죽을힘을 다해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빛을 발견한 작가들의 치열한 흔적이 여기 있다. 우리는 때로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위로받는다.
얼마 전 국내에 번역 출간된 소설 <첫 번째 피>는 벨기에 출신 소설가 아멜리 노통브가 2020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보내는 추도사다. 아버지 파트리크 노통브는 콩고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던 중 20세기 최대 규모의 인질극으로 알려진 ‘1964년 콩고 반군 인질극 사건’을 겪었다. 작가는 죽음 문턱에 간 아버지의 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썼다. 아버지가 사망 후 쓰기 시작한 소설이다. 사실과 허구를 오가는 이 책은 딸로서 아버지를 애도하고 이해하는 과정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인질 협상 과정에서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파트리크는 오히려 강한 생명력을 느낀다. 열두 개의 총부리가 머리를 겨눈 순간, 오히려 ‘살아 있음’에 대한 감각이 가장 생생해지고 삶을 향한 애정이 팽창한 것.
“나는 살아 있고, 계속 살아 있을 것이다. 얼마나? 2분, 두 시간, 50년?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런 식으로 살아야 한다. 나는 그 의식을 영원히 간직하길 희망한다.”
죽음 앞에서 강하게 느끼는 삶의 태동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도 잘 나타나 있다. 존경받는 판사 이반 일리치는 사교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인과 결혼하고 성공의 정점을 달리던 중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어간다. 병상에서 삶 전체를 되짚어보던 그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죽음조차 넘어선다. 죽음을 의식할 때에야 제대로 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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