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찬 얘기가 많이 오갔어야 할 새해 증시 개장일이었지만 지난해와 비교해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작년 이 행사엔 윤석열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최초로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자연히 정부 주도의 밸류업(주식 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시장의 희망도 커졌다.
하지만 지난해 시장은 이 같은 기대와 정반대로 흘렀다. 코스피지수가 9.9%, 코스닥지수가 21.7% 하락한 ‘밸류다운’(주식 가치 하락)의 한 해였다. 정부가 추진하겠다던 배당소득 분리 과세, 법인세 세액공제, 가업상속 공제 확대 등 밸류업 관련 법안들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고환율·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리스크가 대두되며 한국 증시는 힘없이 고꾸라졌다. 연말에는 ‘밸류업’을 가장 앞장서 외치던 윤 대통령이 하락장에 ‘쐐기’를 박았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 이은 탄핵 정국은 투자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불확실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더 큰 문제는 계엄 사태 이후에도 국내 증시를 부양할 밸류업 정책 관련 논의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주식 투자 관련 세제 혜택 법안을 논의할 조세소위는 일정도 못 잡고 있다”며 “탄핵 정국에서 정책 이슈를 논의할 여유도 없어 쟁점 법안 논의는 멈춰선 상황”이라고 했다. 그사이 밸류업 방식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은 여전하다. 이날 행사에서도 정부 여당은 합병·분할·양수도 등 거래 시 주주 보호 원칙을 넣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반면, 야당은 이사의 충실 의무 등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에 힘을 실었다.
행사에서 권 원내대표는 “증시는 국민의 자산 축적을 지원하는 기회의 사다리”라는 윤 대통령의 작년 축사를 그대로 인용했다. 대통령의 잘못으로 붕괴된 국내 증시를 되살리고 투자자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여당이 앞장서 정책 논의의 물꼬를 터야 한다. 이대로라면 올해도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찬 책임은 정치권에 돌아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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