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vs 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올해 미국과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다. 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2022년 미국에 처음으로 추월당한 뒤 4년 연속 뒤처지고 있다. 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1995년 8.0%에서 2005년 4.6%, 2015년 3.1%로 매년 추락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출생률이 극적으로 상승하거나 이민자 유입이 급증하지 않는 한 인구 증가를 통한 전통적 방식의 성장은 어렵다고 본다. 기술혁신과 규제혁신 등 구조개혁으로 생산성을 질적으로 향상해야만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과거 한국의 급속한 경제 발전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진행됐다”며 “미래에도 경제 성장을 위해선 구조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재 성장률은 노동력, 자본 투입, 총요소생산성 등 세 가지 요인으로 구성된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자본 등 기본적 투입 요소 외에 기술 발전과 자원 배분의 효율성, 노사 관계 등을 총체적으로 반영한 생산 효율성 수치다. 노동과 자본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가가치 증가분이라는 뜻이다. 한은은 “우리 경제의 혁신 부족과 자원 배분 비효율성 등으로 총요소생산성 기여도가 낮아지는 가운데 인구구조 변화와 경제 성숙기 진입에 따른 투자 둔화 등으로 노동·자본 투입 기여도까지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잠재 성장률이 5.0%이던 2000년대 초반 노동과 자본 투입,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는 각각 0.7%, 2.2%, 2.1%였다. 2.0% 수준으로 하락한 지금은 노동과 자본 투입, 총요소생산성 기여도가 각각 0.2%, 1.1%, 0.7%로 떨어졌다.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기업은 투자를 주저하는 와중에 질적 생산성마저 하락하고 있다는 의미다. 남창우 KDI 연구부원장은 “선진 기술과의 격차가 축소되면서 모방에 기반한 ‘따라잡기’ 전략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생산성 향상 시도를 막는 과도한 규제가 해소되지 않으면서 성장 동력이 약화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현 추세가 이어지면 잠재 성장률이 2025~2029년 5년간 연평균 1.8%, 2030~2034년 1.3%, 2035~2039년 1.1%, 2040~2044년 0.7%, 2045~2049년 0.6% 등으로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2% 안팎인 잠재 성장률이 15년 후 0%대로 떨어진다는 뜻이다. 2045~2049년엔 노동과 자본 투입,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가 각각 -0.4%, 0.7%, 0.3%일 것으로 내다봤다. 급격한 저출생·고령화 여파로 노동 기여도가 2030년부터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양적인 노동·자본 투입 기여도보다 질적인 총요소생산성 기여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노동과 자본이라는 생산요소 투입에 의한 전통적 방식의 성장이 한계에 달한 상황에서 성장률 하락을 완충해주는 버팀목이던 총요소생산성마저 하락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기술 진보 둔화와 생산자원 배분의 효율성 저하가 하락 요인으로 지목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상 캐치업(catch-up)하는 국가는 후발자로서 성장률이 높아야 한다”며 “한국이 생산성 격차 등으로 프런티어 국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른바 ‘비수렴의 함정’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KDI와 한은은 총요소생산성 향상과 저출생 대책을 통해 한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봤다. 특히 한은은 혁신 생태계 조성, 노동정책 개선 등 구조개혁을 통한 총요소생산성 향상 시 2040년대 후반까지 0.7%포인트의 잠재 성장률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저출생 대책을 통해 합계출산율을 OECD 평균 수준(2021년 기준 1.58명)으로 끌어올릴 경우 0.1~0.2%포인트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수백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저출생 대책보다 구조개혁을 통한 총요소생산성 향상 효과가 더 크다는 뜻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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