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 경제계는 초긴장 모드입니다. 정치·경제의 혼돈 속에 연말 여객기 대형 참사까지 발생해 경제 심리가 극도로 위축됐습니다. 당장은 경제의 중요한 가격 변수인 환율 급등이 걱정입니다. 지난달 27일 서울 외환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6원대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수출 둔화, 내수 침체, 달러 강세에 계엄, 국무총리까지 이른 탄핵 사태로 환율이 ‘비명’을 지르고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을 포함해 역사적으로 네 번밖에 없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11월 미국 중앙은행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때였죠. 지금 상황이 위중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특히 달러당 1450원대의 환율은 외화를 매매하는 외환딜러들에겐 이른바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집니다. 이게 여지없이 뚫리니 시장에 공포감이 더해지는 겁니다.
환율은 수출입과 물가, 주식가격, 외채 규모, 고용 등 여러 경제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환율로 표시되는 한 나라의 통화가치는 그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이어지는 4·5면에서 환율의 역할과 중요성, 환율 변동 요인 등 기초적 이해를 다진 뒤, 최근 환율과 관련해 생각해볼 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단기엔 이자율, 장기로는 물가에 좌우되죠
수출입·물가·주가·고용에 큰 영향
환율만큼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없습니다. 먼저 수출입부터 보죠. 환율이 상승(자국 통화가치 하락=자국 통화 평가절하)하면 기본적으로 수출 기업의 외화 표시 제품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납니다. 만약 원·달러 환율이 1000원이라면 1000원짜리 상품의 수출가격은 1달러가 됩니다. 그런데 환율이 1100원으로 오르면 이 상품의 수출가격은 약 0.9달러로 낮아집니다. 이 경우 수출이 증가할 수 있고, 국내 기업은 생산 확대를 위해 근로자 고용을 늘리려 할 겁니다. 하지만 환율 상승은 수입 상품 가격을 끌어올려 물가를 상승시키고, 원자재를 가공해 수출하는 기업에 제조원가 상승 부담을 키우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환율은 외국인의 투자를 좌우합니다. 만약 외국인이 한국에서 주식 투자로 5% 수익을 올렸다고 해도 환율이 10% 상승해버리면 결과적으로 손실을 보게 됩니다. 투자를 회수할 때 값싸진 원화로 비싸진 달러를 사야 하기 때문이죠. 환율 상승, 즉 원화 가치 하락과 달러화 상승이 예상되면 외국인이 한국에 투자할 매력이 확 줄어듭니다. 환율은 또 경제정책 구사를 어렵게 할 수 있습니다. 환율 상승은 물가 상승을 부르기 때문에 경기회복을 위한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환율의 움직임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효과를 동시에 지닙니다.
이자율평형 조건, 구매력평가 이론
이번엔 환율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볼까요? 환율은 외화의 가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품의 균형가격처럼 외화의 가격도 그 외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따릅니다. 예를 들어 달러의 수요가 늘어나면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고, 달러 공급이 증가하면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죠. 달러의 수요·공급은 기본적으로 수출입을 통해 늘어나고 줄어듭니다.
단기적으로 볼 땐 이자율(금리)이 환율을 좌우합니다. 예를 들어, 국내 금리가 오르면 국내 금융상품에 대한 해외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집니다. 이들의 투자가 늘어나면 달러 등 해외 통화의 공급이 확대되고 원화 수요는 증가합니다. 이에 따라 환율은 하락(원화 가치 상승, 해외 통화 가치 하락)하게 됩니다. 해외투자자 입장에선 한국의 금리가 올라도 환율이 하락해 수익에 변동이 없게 됩니다. 이를 이론적으로 “환율은 이자율평형 조건(interest parity condition)을 따른다”고 합니다. 한편 장기적으로 환율은 물가수준에 좌우됩니다. 두 나라의 물가수준에 차이가 있다면 이를 반영해 환율이 조정·결정된다는 것이죠. 이론적으로는 한 나라의 물가상승률과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율(환율상승률)이 똑같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 “환율은 구매력평가 이론(purchasing power parity)을 따른다”고 표현합니다.
외환시장 안정책 튼튼히 해야
환율이 급등할 때 외환시장을 안정시키는 방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각국 중앙은행은 예기치 않은 환율 급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유가증권, 예치금,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등의 형태로 외환을 보유합니다. 정부는 외화자금의 수급불균형을 조절하고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기도 합니다. 이때 활용하기 위해 평소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해 외국환평형기금을 축적합니다. 이 밖에 국가 간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협정도 맺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과 미국이 이 협정을 맺으면 필요할 때 한국이 원화를 미국 달러화와 맞교환해 외환 보유를 늘리고 환율안정을 기할 수 있습니다. 또는 한국은행이나 국민연금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담보로 달러화 자금을 대출받는 방안도 있습니다.
2. 이자율평형 조건과 구매력평가 이론을 좀 더 공부해보자.
3. 고정환율제와 변동환율제에 대해 살펴보자.
환율 급등이 외환위기로 직결되진 않을 듯
큰 도움 안 되는 고환율
대표적 예가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앞서 살펴봤듯 환율이 오르면 수출 상품의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나 수출기업에 유리해진다는 게 그동안 알려진 상식이었습니다. 반대로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었죠. 그런데 이런 연결고리와 인과관계가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환율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 또는 원화 평가절상) 때 중소기업의 수출은 감소하지만, 대기업은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대기업은 ‘가격 경쟁’에서 ‘기술 경쟁’으로 이미 나아간 경우가 많아 환율에 따른 가격경쟁력 변화가 예전만큼 크지 않습니다. 또 자동차·배터리 등 업종의 대기업은 미국 등지의 현지 생산과 현지 판매를 늘리고 있어 환율의 영향을 덜 받습니다. 원·부자재의 해외 구매를 뜻하는 글로벌 아웃소싱이 늘어나면 환율이 올라갈 때 비용 부담이 커지는데,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최종 제품 가격에 이를 즉각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글로벌 경영이 가속화한 결과, 고(高)환율이 수출 증대에 기여하는 효과가 적어진 겁니다. 한편으론 달러화가 강세를 띠면 원화 환율뿐 아니라 수출 경쟁국인 중국의 위안화, 일본의 엔화 환율도 함께 상승해 우리나라만의 수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고환율이 호재가 아닌, 악재로 받아들여질 정도입니다. 수출엔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수입 상품과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려 국내 물가만 앙등시키기 때문입니다.
단기외채 비중 크게 줄어
환율이 급등하면 외환위기가 현실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단정 짓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 개인이 해외 주식과 채권, 부동산 등을 사고팔면서 얻게 된 순(純)대외금융자산(총매입금액-총매각금액)이 지난해 11월 현재 9778억달러(약 1440조원)에 이릅니다. 해외 자산 투자에서 실현한 투자 차익을 국내로 들여올 때는 달러를 원화로 바꾸게 돼 환율을 낮추는 효과가 생깁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대외부채 상황도 있습니다. 당시엔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 비중이 211.4%로 높았지만, 지금은 이 비중이 37.8%로 낮아졌습니다. 달러 등 외환보유액도 크게 증가했습니다. 1996년 말 332억달러에 불과하던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현재 4154억달러로 12배 늘어났습니다.
강달러 계속될까?
마지막으로 미국이 강달러 흐름을 언제까지 용인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는 일종의 고질병인데요, 곧 들어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높이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 강달러를 약화시키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미국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달러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정책을 추진할 것이란 미국 내 언론 보도도 있었습니다. 20세기 들어 네 차례 펼쳐진 ‘환율전쟁’은 그 핵심이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었습니다. 3차 환율전쟁의 상징인 ‘1985년 플라자 합의’는 결국 2년 뒤 달러화 가치를 30%가량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미국은 평상시에도 교역 규모가 큰 20개국을 상대로 환율조작국 또는 환율관찰대상국 지정을 검토하며 외국 정부의 인위적 환율 개입을 감시합니다. 즉 과도하게 자국 통화가치를 낮춰 달러가 강세를 띠게 만드는 것을 막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내외 경제 여건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높아졌음에도, 지난 11월 미국 정부는 우리를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을 정도입니다.
2. 한때 고환율 정책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장단점을 파악해보자.
3. 강달러의 역사와 환율전쟁 과정을 공부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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