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03일 17:59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분당으로 삼성그룹 임원 300명 집합하세요."
1997년 11월 1월. 삼성은 임직원 총동원령을 내렸다. 삼성의 1호 백화점인 '삼성플라자' 분당점 개점 행사를 위해서다. 개점 행사에는 전무급 이상 계열사 임원 300명을 비롯해 임직원 5000명이 참석했다. 삼성은 당시 자동차 사업과 함께 '미래 신수종사업'으로 유통사업을 점찍었다. 2010년까지 유통업에 3조2000억원을 투입한다는 청사진도 공개했다.
하지만 삼성의 '유통사업 꿈'은 2007년 완전 백지화됐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플라자 분당점 등을 애경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유통사업 투자비가 상당한 데다 외환위기로 내수시장이 위축된 결과다. 삼성 유통사업의 '유산'인 삼성플라자 분당점은 이후 주인이 여러차례 바뀐다. 삼성이 삼성플라자를 적기에 매각했다는 일각의 평가도 있다.
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AK홀딩스는 이날 이사회를 열고 금융회사에서 단기차입금 1000억원을 조달하는 안건을 처리했다. AK홀딩스는 이렇게 마련한 단기차입금 1000억원을 쇼핑몰 자회사인 AK플라자에 재대여한다.
AK홀딩스는 지난해 11월에도 AK플라자에 500억원을 빌려줬다. 지난달 19일 AK플라자 유상증자에 참여해 601억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이번에 1000억원을 추가로 대여할 경우 두 달 새 2101억원을 지원하는 것이다.
AK플라자는 조달한 자금으로 AK플라자 분당점(옛 삼성플라자 분당점)을 재인수할 전망이다. AK플라자는 지난 2015년에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에 자리 잡은 AK플라자 분당점 건물을 캡스톤자산운용에 4200억원에 매각했다. 매각 후 재임대(세일즈 앤드 리스백)를 진행하면서 분당점을 운영해왔다. AK플라자는 이달까지 부동산펀드를 통해 분당점 건물을 다시 사들일 계획이다.
애경그룹은 1993년 애경유지 영등포공장 부지에 AK플라자(옛 애경백화점)를 개관하면서 유통사업에 발을 디뎠다. 2007년 삼성플라자 분당점을 비롯한 삼성물산의 유통부문을 4700억원가량에 인수했다.
삼성은 1990년대 중반부터 삼성플라자와 홈플러스(할인점), 유투존(의류전문점), 삼성몰(인터넷쇼핑몰) 등의 유통업을 전개했다. 삼성이 유통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은 다점포망 구축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당시 백화점 하나를 짓는데 2000억~3000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경쟁자인 롯데백화점은 전국에 수십 개 점포망을 갖췄다. 이 같은 쟁쟁한 경쟁자를 추격하려면 수조 원이 투입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금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추산되는 만큼 삼성물산은 유통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삼성이 삼성플라자를 적기에 매각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플라자를 인수한 AK플라자의 사업 행보가 순탄치 않아서다. 롯데와 신세계 등은 물론 온라인 쇼핑몰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적자를 이어갔다. 적자행진에 지난해 9월 말 부채비율은 9722.4%를 기록했다. 재무구조가 나빠지면서 AK홀딩스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 인수자금을 충당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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