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 요시토모 나라, 무라카미 다카시를 잇는 일본 미술의 ‘다음 주인공’은 누굴까. 가장 유력한 작가는 아야코 록카쿠(42)다. 그는 불과 40대 초반의 나이로 세계 미술 시장에서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쿠사마에 이어 두 번째(2023년 세계 경매 낙찰 총액 기준) 자리에 올랐다. 록카쿠의 무지갯빛 작품은 특유의 생동감과 발랄함으로 가득하다.
록카쿠의 첫인상은 작품에서 연상되는 ‘소녀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눈동자에 담긴 무게감과 관록이 분위기를 지배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차분한 목소리로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그의 말에는 단단한 자기 확신이 있었다. 서울 이태원동 쾨닉서울에서 열리는 록카쿠의 개인전을 계기로 그를 만났다.
록카쿠의 작품은 곧바로 미술계의 눈에 띄었다. 스물한 살이던 2003년 ‘게이사이 아트 페스티벌’에서 상을 받았고, 2007년 네덜란드에서 전시를 열면서 유럽에 진출했다. 이후 15년 넘는 세월 동안 동서양 미술 애호가의 사랑을 두루 받았다. 한때 몇만원이면 살 수 있던 그의 작품은 이제 수억원에도 구하기 어렵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얘기다.
록카쿠의 작품은 독특하다. 미술대학에서 ‘정통 미술’을 공부하지 않아 오히려 독창성을 키울 수 있었다. 영향을 받은 예술가는 잭슨 폴록과 인상주의 화가들. 록카쿠는 “색채의 중첩과 역동성이 살아 있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많은 이가 추측하는 것과 달리 요시토모 나라와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선배 일본 작가의 영향은 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록카쿠의 작품에서 일본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만물에는 신이 깃들어 있다’는 일본 특유의 범신론(汎神論)적 사상이 그림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총천연색 선들이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록카쿠는 “일종의 작은 요정 같은 생명체들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세상의 혼돈과 모순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입체 작품을 처음 만든 뒤 ‘3차원의 재미’에 푹 빠졌어요. 이번 작품은 스페인에서 작품 활동을 할 때 산에 둘러싸여 생활했던 경험에서 모티프를 얻었습니다. 산속에 들어가거나 숲을 걸을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렬한 감정을 느낍니다. 예쁜 것을 봤을 때의 기쁨, 그림을 그리는 창조의 기쁨, 살아 있음의 기쁨 같은 것들을 전하고 싶어요.”
전시는 오는 1월 25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아야코 록카쿠 인터뷰 전문은 ‘아르떼’ 매거진 8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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