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가 예뻐서 보러 오면 뭐 합니까. 자기 이름을 찾아줘야죠.” 지난달 말 방문한 강원 동해시 묵호진동. 동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언덕 위에 다소 이질적인 건물이 있다. 한국식 기와지붕이 덮인 흰색 벽에는 유럽식 그릇과 소품이 장식돼 있다.
대문 옆에는 ‘독일 여자 유디트가 동해 고(古)지도와 독도 지도를 전시하는 집’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다. 개관한 지 이제 막 2주차에 접어든 무료 전시관 겸 유럽 소품 판매점이다. 이곳엔 동해가 ‘한국해’로 표기된 고지도 4점의 실물과 이에 관한 설명이 담긴 영상이 전시돼 있다.
이곳 주인은 독일 괴팅겐 출신 유디트 크빈테른 씨(52)다. 그는 20여년 전 독일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밟던 남편 이희원 씨(63)를 만나 결혼한 뒤 2000년 한국에 정착했다. 한양대 안산캠퍼스와 강릉원주대 등에서 11년간 독문학 초빙교수로 일한 그는 요즘 고지도에 꽂혀 있다. 2023년 3월 독일 퓌르스텐베르크를 방문한 게 계기가 됐다.
당시 이들 부부는 도자기로 유명한 퓌르스텐베르크에서 한국에 들여올 빈티지 물건을 찾고 있었다. 경기 여주에서 운영 중인 창고형 가게에서 판매할 유럽 앤티크 소품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당시 들른 도자기박물관에서 크빈테른씨의 눈에 들어온 건 옛날 지도였다. 1744년 영국에서 제작된 세계지도에 한국의 동해가 ‘한국해(Sea of Corea)’로 적혀 있는 걸 발견하면서다.
그는 “너무 놀라웠다”고 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크빈테른씨는 300~400년 전엔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도 동해를 한국의 바다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국제 사회에서 동해가 일본해로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해에 자기 이름을 찾아줘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한국의 동해를 찾아온 많은 외국인 여행객은 정작 ‘일본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동조했다.
이후 크빈테른씨는 동해를 한국의 바다로 명시한 고지도를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럽 고서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첫 구매품은 2023년 여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갔을 때 나왔다. 한 고서점에서 1765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작된 아시아 지도를 팔고 있었는데, 동해가 ‘한국해(Mer de Coree)’로 적혀 있었다. 그는 200유로(약 30만원)가량을 주고 그 지도를 샀다.
현재까지 모은 고지도는 30개에 이른다. 이 중엔 한국해뿐만 아니라 ‘독도’라고 명시된 지도도 네 개 있다. 가격은 제작 연도와 크기, 품질, 희소성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크빈테른씨가 가장 비싸게 주고 산 지도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772년 제작된 세계지도로 약 500유로를 내고 한국에 들여왔다. 크빈테른씨는 “고지도를 사 모으는 데만 거의 7000유로(약 1000만원)를 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안에서 한국 사람끼리만 ‘동해는 한국 바다’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말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며 “동해 표기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으려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동해=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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