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계획 중단 명령을 내린 것을 두고 일본 내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일본제철과 US스틸은 4일(현지시간) “조사 결과에 근거하지 않고 미리 결정해둔 결론이었다”며 “(일본제철이) 미국에서 사업하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법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조처를 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데이비드 버릿 US스틸 최고경영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동은 부끄러운 것이며 부패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인수 불허는 미국 경제 안보를 위험에 빠뜨린다”며 “이번 결정으로 득을 보는 것은 중국”이라고 주장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사설에서 “미국 안보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고 부당한 정치 개입”이라며 “강력히 비난한다”고 썼다. 바이든 대통령이 철강노조의 눈치를 보느라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이 결정이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동맹국과 공급망 강화를 중시한 바이든 정권 이념에 크게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이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사를 근거로 인수 중지를 명한 사례는 8건 있었지만 7건은 중국 관련 기업이었고 동맹국 기업은 전례가 없었다. 요미우리는 사설에서 일본이 2023년까지 5년 연속으로 대미 투자 총액 1위 국가였다면서 “도리에 어긋나는 결정은 대미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언론의 시선도 곱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제조업과 안보를 훼손하는 경제적 자학 행위”라고 비판했다. WSJ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등 외교 라인에서는 일본이 동맹국인 만큼 거래를 유지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바이든 대통령에게 조언했으나 자국 정치 논리에 밀린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는 향후 시나리오 중 하나로 20일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정책을 뒤집을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현실성은 높지 않다. 트럼프 당선인도 지난해 일본제철의 인수 계획에 대해 “완전히 반대”라고 밝혔다. 데이비드 매콜 미국철강노동조합(USW) 회장은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차기 정부에서도 (저지 결정은)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일본제철의 투자를 받지 못할 경우 철강 수요 감소와 높은 생산비로 고전하고 있는 US스틸의 경영 상황은 한층 악화할 것이 뚜렷하다. 작년 10~12월 손익은 4분기 만에 적자로 돌아섰을 것으로 추정된다. US스틸 경영진은 인수가 불발되면 제철소를 폐쇄하고 본사를 이전할 수 있다고 시사해왔다.
1901년 창업한 US스틸은 미국을 대표하는 전통 기업이다. 1960년대까지 세계 최대 철강 메이커였으나 일본과 유럽, 최근에는 중국 기업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2023년 조강 생산량은 약 1500만t으로 일본제철의 3분의 1이다. 세계 순위는 24위로 10년 전 13위에서 크게 떨어졌다.
일본제철도 인수가 완전히 불발되면 철강 내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해외 판로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완전 자회사로 만드는 대신 자본을 제휴하거나 일부 시설만 인수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도쿄=김일규/워싱턴=이상은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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