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자문회사 TS롬바르드의 로리 그린 아시아리서치총괄 겸 수석이코노미스트(사진)는 4일(현지시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예상보다 탄핵 관련 혼란이 장기화하면서 한국 자산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고 분석했다.
그린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달 3일 글로벌 투자사 가운데 가장 먼저 심층 리포트를 내고 윤 대통령 탄핵 가능성과 한국 경제에 관한 시나리오별 전망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그는 2012년부터 서울과 중국 베이징, 영국 런던을 오가며 근무한 아시아 전문가다.
▷계엄·탄핵 사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최근 몇 년간 한국에 관한 인식은 투자를 넘어 문화적 차원에서도 긍정적으로 변해왔습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케이팝, 한식 등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죠. 그러나 이번 정치 혼란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이 다시 신흥시장 카테고리로 후퇴한 것 같습니다.”
▷외국인 자금이 돌아오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 한국의 탄핵 절차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끝이라고 생각한 외국인 투자자가 적지 않았어요. 세계적으로 ‘도널드 트럼프 리스크’로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특히 더 취약한 위치에 있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처럼 경제 규모가 크고 기술, 문화, 제도 안정성 등 모든 분야에서 발전 수준이 높은 나라의 증시가 왜 신흥시장으로 분류되는지 묻곤 했습니다. 지금의 정치적 혼란은 그 이유를 알려주는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트럼프 리스크’, 한국 기업의 인공지능(AI) 경쟁력 우려 등이 겹쳐 투자심리에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이 더 취약한 이유는 뭔가요.
“원화 가치부터 볼까요.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겨냥해 관세를 매기면 위안화 가치 절하는 불가피할 겁니다. 위안화와 동조성이 큰 원화도 약세 압박을 받겠죠.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을 받던 한국 수출과 주요 기업도 타격이 예상됩니다. IRA 축소를 예고해 온 트럼프 2기 정부에선 정책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리더십 공백 우려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특히 한국은 트럼프 1기 때 주한미군 주둔 비용 관련 압박을 받았습니다. 무역 관세와 관련해서도 한국이 직접적 표적은 아니겠지만 트럼프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의 협상을 책임질 사람이 누구인지 불분명한 점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한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1.8%로 예상합니다. 이번 사태 직전엔 2%로 전망했으나 혼란 수습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으로 보고 하향 조정했습니다. 다만 탄핵 절차가 빠르게 끝나고 조기 대선이 4월 안에 치러진다면 2%까지 상승할 여력도 있습니다.”
▷왜 4월인가요.
“늦어도 4월 안에 정부와 국회가 정상화되고 추가경정예산이 집행돼야 연내 재정 부양을 통한 내수 회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도 금리 인하를 통해 소비 회복을 보조할 것으로 봅니다. 반대로 정치 불안이 더 장기화하면 현재 기본 전망인 1.8%보다 GDP 증가율이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경기 부양책이 원화 약세를 부추기지 않을까요.
“지금은 세계 대부분의 통화가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이 원화 가치 하락만으로 한국 투자를 꺼리지는 않을 겁니다. 재정 적자도 일회성 긴급 예산에 그친다면 큰 우려는 아닐 거고요. 다만 확장 재정 기조가 강한 민주당이 여당이 돼 복지 강화, 정부 지출 확대 등 장기적인 정책 변화를 시도한다면 시장에서도 재정 지속 가능성에 관한 우려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국 증시를 전망해 주십시오.
“외국인 투자자의 포지션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AI 전환 및 채택 과정에서 뒤처진 것으로 보여 유가증권시장 전반의 투심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상승 여력은 있습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우려만큼 공격적이지 않고 재정 정책과 금리 인하, 정치적 불확실성 제거라는 재료들이 실현된다면 한국 증시도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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