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28)가 언니 슬아씨와 식사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 ‘천재 소녀’이던 그가 커트 탈락을 거듭하며 최악의 시즌을 보내던 때였다.
1년 뒤인 지난해 8월, 파리올림픽 여자골프 최종 라운드 18번홀에서 리디아 고는 그린으로 이동하며 그날을 떠올렸다. 두 번째 샷을 핀 2.3m 옆에 붙여 여유 있게 금메달을 확정지은 상황이었다. 그는 6일 기자들과 만나 “스스로에게 갖고 있던 의심을 이겨낸 나 자신을 칭찬해줬다”며 활짝 웃었다.
파리올림픽 금메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명예의 전당’ 최연소 입회, 메이저대회 AIG여자오픈 우승까지 ‘동화 같은’ 순간으로 가득한 2024년을 뒤로 하고 리디아 고가 새로운 시작에 나선다. 그는 이날 서울 도곡동 아이엠탐 본사에서 보스골프 의류 후원을 발표하며 “새 목표인 커리어 그랜드슬램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LPGA투어 21승 보유자인 리디아 고는 서울에서 태어나 여섯 살에 뉴질랜드로 건너갔다. 2012년 호주여자프로골프(ALPGA)투어 NSW오픈에서 최연소 우승(14세)을 차지한 그는 2014년 16세에 프로에 데뷔한 뒤 최연소 세계 랭킹 1위, 최연소 메이저 대회 우승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몇 번의 크고 작은 슬럼프를 겪은 끝에 리디아 고는 지난해 최고의 시간을 보내며 세계 랭킹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리디아 고는 “2023년 부진이 이어지면서 자신감을 잃었는데 지난해 올림픽에서 금메달로 명예의 전당 자격을 완성한 것이 정말 꿈만 같았다”며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감사한 한 해였다”고 돌아봤다. 슬럼프를 극복한 비결은 “가족과 팀 등 늘 좋은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이라며 “지난해를 통해서 또 부진을 겪더라도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결혼은 리디아 고의 세계를 한층 더 넓혀줬다. 그는 남편 정준 씨(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아들)에 대해 “AIG오픈 경기 중에 ‘공이 부족할 것 같다’고 하자 호텔로 달려가 공을 직접 가져다줄 정도로 지지해준다”며 “나라면 나 같은 사람은 만나지 않을 것”이라며 웃었다.
승부욕도 리디아 고를 지치지 않게 만드는 힘이다. 그는 “아버지와 내기 골프를 쳐도 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승부욕이 강하다”며 “선수로 뛰는 동안은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고, 그만큼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LPGA투어 5대 메이저대회 중 에비앙챔피언십(2015년), ANA인스피레이션(2016년·현 셰브런챔피언십), AIG여자오픈을 제패한 리디아 고는 US여자오픈과 KPMG여자PGA챔피언십 중 한 대회에서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4개 이상 메이저대회 우승)을 달성한다. 그는 “페어웨이·그린 안착률을 모두 73% 위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동계훈련 기간에 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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