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선박 발주가 늘어난 것은 중국·미국 간 태평양 항로와 아시아·유럽 간 교역에 투입되는 초대형 선박 수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국의 셧다운으로 물류 쇼크를 겪은 주요국은 베트남, 인도, 멕시코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들 지역은 상대적으로 선적량이 적고 초대형 선박이 입항할 수 있는 항구도 많지 않다. 해운사들은 빠른 시장 대응을 위해 중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늘렸고, 최근 컨테이너선이 속속 인도되고 있다. 보통 선박을 주문해 인도하는 데 약 3년이 걸린다.
중형 선박 증가는 컨테이너선 대형화가 계속된 팬데믹 이전과 정반대 흐름이다. 10년 전까지 1만2000∼1만6900TEU급 컨테이너선이 초대형으로 여겨졌으나, 2010년대 후반에는 미국 해군 항공모함 만재 배수량의 두 배에 달하는 2만TEU급 컨테이너선이 등장했다. 컨테이너선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한계인 2만4000TEU급까지 체급을 키웠다.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선박 공격도 유럽행 항로의 초대형 선박 수요에 타격을 줬다. 중국발 유럽행 컨테이너선이 홍해 대신 희망봉으로 돌아가면서 운송 기간이 대폭 늘어 배를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큰 배가 중간에 화물을 싣기 위해 다른 항구를 경유하면 운송 기간이 과도하게 늘어난다. 영국 로펌 HFW의 윌리엄 맥라클란 선박 자문 변호사는 “작은 선박이 거시 경제 이벤트에 더 쉽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 규제도 요인으로 꼽힌다. 유럽연합(EU)에서는 총톤수 5000t 이상의 선박은 배출하는 온실가스만큼 탄소배출권을 구입해야 한다. 중견 해운사들은 선박에 대한 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친환경 대체 연료의 공급도 한정돼 있어 초대형 선박 발주를 망설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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