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지금은 이순신 정신 필요한 때…위기 극복 DNA로 혁신"

입력 2025-01-06 17:58   수정 2025-01-07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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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놓인 도전과 불확실성 때문에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변화와 혁신 그리고 위기 극복이 현대자동차그룹의 DNA인 만큼 면밀히 준비해 미래 기회 창출로 연결합시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퍼펙트 스톰’처럼 몰아치는 대내외 위기 상황을 혁신을 통해 돌파하자고 주문했다. 6일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신년회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2.0시대 개막’과 장기화하는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중국 전기차의 공습 등 어려운 경영 환경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얘기다. 국내 주요 그룹 중 총수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임직원에게 위기 극복 메시지를 건넨 것은 정 회장이 처음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잘했으니 올해도 잘되리라는 낙관적 기대를 할 여유가 없다”며 “잘 버티자는 것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기에 움츠러들면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하게 된다”며 혁신을 통해 공격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순신 정신’을 꺼내 들었다. 정 회장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놓치지 않고 살핀 이순신 장군처럼 위기 속에서도 위축되지 말고 자신감 있게 체질을 개선해 나가자”고 말했다.

빠른 실행과 재도전도 주문했다. 정 회장은 “실패는 현대차그룹이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만큼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며 “실패를 걱정하지 말고 빠른 실행과 재도전에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산업계는 올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정 회장이 ‘공격 경영’을 주문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의 공세가 거세진 데다 핵심 시장인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관세 인상과 전기차 보조금 폐지 등을 예고하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위기일수록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서 그룹 위기 돌파 선언
전기차 캐즘 등 악재 '정면돌파'…글로벌 완성차 업계 '지각변동'

중국과 경쟁하는 기업들은 요즘 “해법이 안 보인다”는 말을 달고 산다. 안 그래도 가격 경쟁력이 훨씬 높은데 최근 들어 기술력도 부쩍 올라서다. 석유화학, 배터리, 가전, 철강, 반도체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가 중국의 사정권에 들어갔다. 이뿐만이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미국 우선주의와 계엄 사태 여파로 불확실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모두가 ‘퍼펙트 스톰’에 휩싸였다며 비상경영에 나선 이때,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정 회장은 6일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신년회에서 “대내외 상황이 어렵다고 움츠러들어선 안 된다”며 “혁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현대차 DNA로 혁신”
글로벌 완성차업계는 지각 변동에 휩싸여 있다. 중국의 전기차 공습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수입차를 막기 위해 관세 장벽을 쌓고 있어서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전통의 강호들은 감산과 감원에 나섰고, 일본 2~3위 회사인 혼다와 닛산은 합병 절차에 들어갔다. 이날 현대차 신년회에서 정 회장 연설 직전에 상영된 동영상에도 현대차의 라이벌로 떠오른 중국 비야디(BYD) 전기차들이 나왔다.

세계 3위인 현대차·기아도 거센 파도의 영향권에 있다. 정 회장은 하지만 위기보다 기회에 초점을 맞췄다. 정 회장은 “올해가 위기냐, 기회냐는 반반 정도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우리 상황에 대해 걱정도 있지만 희망도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작년에 잘됐으니 올해도 잘되리라는 낙관적 기대를 할 여유가 없다”면서도 “우리는 항상 위기를 겪어왔고, 훌륭하게 극복해온 현대차그룹의 DNA가 있으니 혁신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사상 최대인 171만 대를 팔았다. 지난 3일에는 아이오닉 5, 아이오닉 9 등 5개 차종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급 대상에 처음 들어가는 호재도 있었다.

성 김 현대차그룹 대외협력·PR담당 사장은 이날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관련해 “현대차그룹은 ‘롱 텀 플래닝’을 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다”며 “너무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고 (상황을) 보고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최고경영자(CEO·사장)도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차그룹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의 생산량 목표를 연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늘릴 것”이라며 “신중하지만 동시에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경쟁사와 협력 가능”
현대차그룹은 상대적으로 중국 전기차 공습으로 인한 타격은 크지 않은 편이다. 현대차의 주력인 미국시장에 중국 전기차가 입성하지 못해서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캐즘이 길어지는 점을 감안해 하이브리드카로 체력을 비축하면서 중국 전기차와의 본격적인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내연기관차, 하이브리드카, 전기차를 다 갖춘 현대차그룹의 강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얘기다. 현대차는 올해 팰리세이드(하이브리드카), 아이오닉 9, 넥쏘 후속 수소차를, 기아는 EV4, 타스만, EV5, PV5 등을 글로벌 시장에 쏟아낸다.

현대차그룹은 이렇게 번 돈으로 수소차(현대차), 자율주행 및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포티투닷), 산업용 로봇(보스턴다이내믹스), 도심항공교통(슈퍼널) 등 미래 기술을 키우고 있다. 장재훈 현대차 부회장은 이날 “수소는 미래 세대를 위한 중요한 영역으로 전체적인 수소 밸류체인을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를 책임지는 송창현 현대차 첨단차플랫폼(AVP) 사장은 “가장 중요한 건 우수 인재 확보”라며 “소프트웨어를 내재화해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양산차에 적용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정 회장은 글로벌 완성차업계의 합종연횡과 관련해선 “혁신을 향한 굳은 의지는 조직 내부를 넘어 외부로도 힘차게 뻗어나가야 한다”며 “필요에 따라서는 경쟁자와 전략적으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현대차는 최근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괄적 동맹을 맺은 것을 비롯해 웨이모, KT, 삼성전자 등과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김진원/김재후 기자 jin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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