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스탱 트뤼도(53) 캐나다 총리가 6일(현지시간) 사임 의사를 밝혔다. '진보 정치의 아이콘', 캐나다의 오바마', '가장 잘생긴 지도자' 등 수식어로 인기를 끌었던 그는 역대 캐나다 총리 중 가장 인기 없는 인물로 정치 경력을 마무리 짓게 됐다. 주요 원인은 고물가와 이민자 정책 실패 등이 꼽힌다.
트뤼도 총리는 지난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누르고 10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해 국내외에서 연예인급 인기를 거머쥔 '스타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그는 캐나다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1968~1979년, 1980~1984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총리를 지낸 캐나다 정치의 거목 피에르 트뤼도(1919~2000년)의 장남이다. 부친의 후광을 엎고 사교적 성품과 진보적 가치를 앞세워 2013년 자유당 당수로 선출되는 이변을 일으켰으며, 2015년 11월 총리에 취임한 바 있다.
그는 잘생긴 외모로 미국 순위 선전 전문 매체 '하티스트 헤즈 오브 스테이트'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리더로 꼽히기도 했다.
총리 취임 당시 '캐나다의 오바마'로도 불렸던 트뤼도는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취임 직후 미국을 국빈 방문하며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며 '브로맨스'(남성 간 우정)를 과시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처음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는 정치적 차별점을 부각하며 진보 지도자의 명성을 이어갔다.
그러나 지난 2019년 조디 윌슨-레이볼드 전 법무부 장관이 비리 수사를 받은 캐나다 최대 건설사 SNC-라발린을 선처하도록 자신에게 압력을 넣었다고 폭로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그가 이끄는 집권 자유당은 2019년 총선에서 승리하긴 했으나, SNC-라발린 스캔들 등 여파로 단독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연정으로 국정을 운영하게 됐다.
인기 추락을 불러온 가장 큰 요인으로는 팬데믹 이후 나타난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가계의 고통이 커진 점이다. 고물가 상황에서 탄소세 인상을 야당과 지방정부의 강력한 반대 속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도 지지율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늘어난 이민자 유입이 주택 부족을 비롯해 각종 문제를 야기한 것도 보수당 지지 상승으로 이어졌다. 작년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한 시크교 사원 주차장에서 캐나다 국적의 시크교 분리주의 지도자가 괴한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일을 계기로 인도와 상대국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등 외교 갈등이 격화하는 일도 발생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1년 6개월간 여론조사에서 집권 자유당은 선거 시 야당인 보수당에 패배할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뤼도 총리의 지지율이 약 20% 수준으로 떨어졌고, 보수당과의 지지율 차이는 20%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진 상태였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재출범도 그에게는 악재가 됐다. 트뤼도 총리의 핵심 지지 세력이었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재정 정책을 두고 그와 충돌하며 지난달 16일 전격 사임했다.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가 예고한 25% 고율 관세 대응 문제 등을 두고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충돌한 게 계기였다는 해석이 나왔다.
프리랜드 장관 사임 발표 나흘 뒤 집권 자유당과 정책 연합을 맺어왔던 진보 성향 신민주당(NDP)은 정부 불신임안 제출을 예고했다. 자유당이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야당이 불신임안을 지지한다면 트뤼도 총리는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며 캐나다는 조기 총선 실시가 불가피한 탓이다.
결국 6일 트뤼도 총리는 추운 겨울 날씨 속 관저 앞 야외에서 기자들 앞에 서며 "이제는 리셋할 시간"이라며 사임 계획을 발표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