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유언 녹음 원본 사라졌는데…상속 어떻게 하나요?" [더 머니이스트-김상훈의 상속비밀노트]

입력 2025-01-13 06:30   수정 2025-01-13 15:50


A씨는 B씨와 혼인해 자녀로 C·D·E씨 삼형제를 뒀습니다. A씨는 2018년 8월 사망하기 6개월 전인 같은해 2월 입원 중이던 병실에서 변호사인 K씨의 휴대폰으로 녹음해 유언을 남겼습니다. 유언 녹음 당시에는 K씨가 증인으로 참여했고, C씨와 D씨가 입회했습니다. 유언의 내용은 A씨의 재산 대부분을 아내인 B씨와 자녀 C씨, D씨에게 남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막내아들인 E씨는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을 가 부모와 왕래가 없었고 연락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A씨는 E씨를 상속에서 배제했습니다.

A씨 사망 후 D씨는 2018년 11월 서울가정법원에 녹음유언에 대한 검인을 신청했습니다. 그러자 E씨는 유언 검인기일에 출석해 본인은 A씨가 유언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이 녹음은 원본이 아니기 때문에 유언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녹음 원본을 소지하고 있던 K씨는 녹음 직후 녹음파일을 바로 D씨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하고 원본파일을 삭제해 녹음 원본파일은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이에 B씨와 C씨, D씨는 A씨의 녹음유언이 유효하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유언효력 확인의 소)을 제기했습니다. 과연 원본이 사라진 경우에도 유언은 유효할까요?



민법상 유언방식으로는 자필유언과 공증유언, 그리고 녹음유언 등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자필유언과 녹음유언의 경우 유언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정법원에 유언검인을 신청해야 합니다(공증유언은 유언 검인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유언 검인기일에 상속인 중 한 사람이라도 유언대로 집행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그 유언은 집행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런 경우 어쩔 수 없이 법원에 유언효력 확인의 소를 제기해 승소 판결을 받아야만 집행이 가능합니다. 이 사건에서도 E씨가 유언 검인기일에 녹음유언대로 집행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에 나머지 상속인들이 E씨를 상대로 유언효력 확인의 소를 제기한 것입니다.

문제는 녹음유언의 원본파일이 사라진 경우에도 녹음유언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입니다. 법원에 증거를 제출할 때 그 증거는 원본이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원본이 아니라 사본만 제출한 경우에는 정확성의 보증이 없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부적법합니다. 따라서 원본의 존재 및 그 내용에 관해 당사자들 간 다툼이 있고, 사본을 원본의 대용으로 하는 것에 대해 상대방으로부터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사본으로 원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사본을 제출한 당사자가 원본을 분실했다든가 선의로 이를 훼손한 경우, 문서제출명령에 응할 의무가 없는 제삼자가 해당 문서의 원본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 원본이 방대한 양의 문서인 경우 등 원본 문서를 제출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상황에서는 원본을 제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같은 경우라면 사본을 증거로 제출한 당사자가 원본을 제출하지 못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유를 주장하고 증명해야 합니다(대법원 2023. 6. 1. 선고 2023다217534 판결).

유언자가 유언하면 그 유언이 민법이 요구하는 요건을 모두 갖추기만 하면 유효한 것이 되고, 설사 그 유언의 원본이 멸실되거나 분실됐다고 해서 유언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해관계인은 다른 방식으로 유언의 성립과 내용을 증명해 유언의 유효함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1996. 9. 20. 선고 96다21119 판결). 녹음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와 그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하면 유효하게 성립합니다(민법 제1067조).

이 사건에서는 K씨의 법정 증언과 녹음에 대한 감정 등 증거조사를 통해 A씨가 법적 요건을 갖춘 녹음유언을 한 사실, 그 내용이 A씨의 재산 대부분을 아내인 B씨와 자녀 C씨, D씨에게 남긴다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인정됐습니다. 그리고 원래 녹음 원본파일을 보관하고 있던 증인 K씨가 그 파일을 D씨에게 전송한 다음 실수로 원본파일을 삭제해 그 원본을 증거로 제출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도 인정됐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설사 녹음의 원본파일이 아닌 사본을 제출했더라도 유언의 존재 및 내용이 증명된 만큼 유언의 효력은 인정됩니다.

이상과 같이 유언장의 원본이 없더라도 사본으로도 유언의 효력을 인정받을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이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유언장 원본을 잘 보관해야 하고 함부로 없애버리거나 잃어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김상훈 법무법인 트리니티 대표변호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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