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들과 무의식의 바다를 떠도는 '이상한 나라'

입력 2025-01-07 18:30   수정 2025-01-0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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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햇살 가득한 오후 우리는 한가로이 물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가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한국 작가 디렌리(이수연·41)의 신작 ‘스트롤 스루 더 돈(Strolling Through the Dawn·새벽을 거닐다·사진)’을 보면 이 고전의 첫 문장이 절로 떠오른다. 화가를 닮은 주인공이 동물들과 함께 무의식의 물결을 항해하고 있다. 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그림의 배경이 ‘황금빛 오후’가 아니라 동트는 새벽이라는 것. 잠든 사이 얻은 영감을 한아름 안고 현실로 복귀하는 주인공의 눈망울이 앨리스보다 빛난다.

꿈과 무의식을 그리는 디렌리의 ‘이상한 나라’가 서울 청담동 탕컨템포러리에서 열렸다. ‘리멤버(ReMember)’란 제목으로 선보인 이번 개인전에선 몽환적인 분위기의 신작 37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하나의 줄거리를 구성한다. 아침마다 전날 꾼 꿈을 기록한다는 작가가 자아정체성을 찾아 나서는 줄거리다.

작가에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정체성의 혼란과 소재 고갈에 대한 두려움 등이 그를 위협한다. 동화 속 세계 같은 꿈이 작가의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다.

이번 신작에선 낮과 밤, 불과 물 등 상반되는 요소가 캔버스를 양분하는 구도가 돋보인다. 꿈과 현실, 상처와 치유가 공존하는 세계를 빗댄 것이다. 전시는 오는 25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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