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의 시작은 리서치부터” [홍성국 칼럼]

입력 2025-01-15 08:59   수정 2025-01-15 09:00

금융시장은 다양한 생각과 정보, 투자자의 대응이 섞이면서 가동된다. 다소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생각이 늘 등장하고 가격이 바뀌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이 합리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생각이 넘쳐나야 한다. 공자 등 제자백가가 세상의 이치에 대해 논쟁하던 백가쟁명(百家爭鳴)식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리서치는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금융시장의 핵심 기관이다. 리서치가 없으면 변화하는 정보나 신기술을 평가하는 기반이 사라지기 때문에 가격의 신뢰성이 낮아진다.

이런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리서치는 역주행하면서 중요성이 평가절하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리서치 스스로 자초한 측면과 코리아 디스카운트라고 하는 사회문화적 한계에 기인한다.

회계감사를 직접 수행하는 회계사들은 애널리스트보다 기업에 대해 더 잘 안다. 그러나 투자의 세계에서 가격은 미래 가치를 현재 시점에 반영하는 것이다. 금리나 기업 이익, 주가 등에는 현재 가치를 기반으로 미래의 변화가 녹아 있다.

따라서 애널리스트의 본질적 책무는 회계사와 달리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연구하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1년 후쯤 세상을 살아간다는 표현이 어울릴까.

그러나 미래를 탐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양자컴퓨터라도 예측이 어려울 것이다. 애널리스트들은 미래를 연구하기 위해 더 치열해져야 한다. 미래는 모든 것이 어우러져 만들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으면 오류는 피할 수 없다.

한국 애널리스트들은 나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분석의 틀이 좁다는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거시경제, 기술동향, 사회문화적 전환 등 다양한 변수를 탐구한 기반 위에서 자신의 영역을 연구해야 한다. 너무 좁고 편향된 시각이 많다는 점은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애널리스트들은 사회적 책임감도 강해야 한다. 글로벌 투자의 확산, SNS를 통한 정보 유통 등으로 투자자들은 과잉 정보에 노출되어 있다. 가짜뉴스와 무한대의 탐욕이 결합되면서 시장은 ‘투자=투기=게임’적 성향이 강해졌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객관성 높은 정보는 오히려 부족해졌다. 가격을 발견하고 미래를 밝히는 애널리스트의 파수꾼적 소명 의식이 중요하다.

미래 예측을 넘어 사회 전체에 선(善)한 영향력을 준다는 책임감이 필요하다. 당연히 객관적인 판단과 개인적 이해관계를 벗어나서 투명하게 연구해야 한다. 또한 마케팅이 주로 기관투자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개인투자자들에 대한 교육 비중도 높여야 한다.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연구에 대해 소신 있게 얘기하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현상에 대한 분석에만 매달릴 뿐 정책 대안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그동안의 관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국책연구기관이나 학자들의 분석은 별 효용이 없다.

반면 글로벌 차원에서 최신의 세상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의 조언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정책 당국자를 많이 만나본 경험으로 보면 이제 정책당국도 금융권 리서치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오히려 리서치가 더 민감한 느낌이다.

한국에서 팔자(sell) 리포트를 쓰기는 정말 어렵다. 자기 회사 주가는 직원들이 가장 모른다는 통설이 있다. 기업은 애널리스트의 견해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늘 자사 주가는 올라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애널리스트를 스텔스(stealth) 경영자, 혹은 조언자로 받아들인다면 기업은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경영 실패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금융기관 경영자의 자성도 필요하다. 최근 증권사의 이익 규모는 커졌지만 리서치 인원과 투자는 오히려 줄어들었다. 리서치를 제조업에 비유하면 R&D와 같은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증권사 경영의 본질인데 리서치 투자를 줄인다면 금융기관의 존립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투자자들은 정부와 기업의 갑질, 증권사의 단기 경영을 감시하면서 리서치를 보호해야 한다. 리서치는 투자의 세계라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밝히는 등대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밸류업의 출발은 리서치부터 시작해야 한다. 리서치가 강하고 제 역할을 할 때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완화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미래를 만드는 애널리스트들의 분발을 기원한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제21대 국회의원,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 전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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