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에 따라 공대 인재 궁핍 상황이 현실화할 조짐이다. 최고 과학 인재가 모이는 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의 2025학년도 정시 지원자가 지난해 대비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과대학 정원이 한꺼번에 1509명 늘어나자 최상위권 학생이 대거 의약학계열로 몰렸기 때문이다. 올해 정시 의대 지원자는 6년 만에 1만 명을 넘어섰다. 고급 두뇌를 키우는 과학기술원까지 ‘의대 증원 후폭풍’에 휩싸이자 미래 과학기술 인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광주과학기술원(25.2%), UNIST(울산과학기술원·23.0%), 대구경북과학기술원(22.7%) 등도 지원자가 크게 감소했다. 2022년 개교한 한국에너지공과대는 개교 당시 정시 지원자가 953명에 달했는데 올해는 281명으로 70% 급감했다. 지난해(401명)와 비교해도 29.9% 줄었다.
과학기술원과 한국에너지공과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 인재를 양성하는 특수 목적 대학이다. 정시 모집에서 군별로 한 번씩, 총 세 번만 지원할 수 있는 횟수 제한이 없다. 이중 등록 금지 규정도 적용되지 않아 다른 대학 수시에 붙은 수험생도 정시에 지원할 수 있다. 종로학원은 “횟수 제한이 없음에도 지원자가 급감한 것은 과학기술원 등에 대한 관심과 선호도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의약학계열 등에 중복 합격한 학생들이 등록을 포기해 추가 합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공계 기피 현상도 갈수록 심해지는 양상이다. ‘스카이(SKY)’로 불리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자연계열 경쟁률은 4.21 대 1로 전년(4.63 대 1)보다 하락했다. 반면 의대 경쟁률은 지난해 3.71 대 1에서 올해 3.80 대 1로 올랐다. 명문대 자연계열에 합격해도 포기하는 학생이 많다. 연세대 수시 자연계열 합격자 중 1046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모집 인원(1047명)의 99.9%에 해당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의대 모집 정원 확대가 서울대 등 최상위권 자연계와 과학기술원 지원자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며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약학계열 등에 집중 지원한 상황에서 과학기술원 등의 정시 합격 점수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이공계 지원자가 감소함에 따라 우수 과학기술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연구개발(R&D) 예산을 깎고 의대 정원을 늘리기로 할 때부터 예상된 일이었지만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주요 대학의 한 공과대학 교수는 “R&D 예산을 다시 늘렸다고 하지만 신규 사업에만 지원해 기존 연구들이 받는 타격은 여전하다”며 “이공계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인식을 바꾸지 않는 한 과학기술 인재 양성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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