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08일 13:0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 회사 주가는 경영권 분쟁 여파로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임직원과 주주들은 혼란에 빠졌다.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사진)은 8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려아연 기업가치를 30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오는 23일 열리는 고려아연의 임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앞둔 김 부회장은 "경영권 분쟁을 하루 빨리 마무리짓고 고려아연 경영 정상화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번 임시 주주총회에서 분쟁이 일단락될 수 있게 주주들이 힘을 모아달라"고 했다.
"최 회장, 집중투표제 악용…경영권 방어용으로 전락"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은 임시 주총 주주명부 폐쇄일인 지난달 20일 기준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40.97% 보유 중이다. 의결권 기준으로는 46.7%에 달했다. 김 부회장은 "주총 참석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과반 지분을 확보했다"며 "이번 주총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지만 집중투표제 도입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김 부회장이 언급한 집중투표제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제시한 카드다. 집중투표제는 이사를 선임할 때 주식 1주당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최 회장은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MBK 연합의 이사회 장악을 막을 수 있다. 소액주주 보호가 목적인 집중투표제를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부회장은 "1, 2대주주가 고려아연 지분 대부분을 보유한 지배구조를 고려할 때 소액주주가 집중투표제를 통해 이사회에 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경영권 분쟁 강도만 키우는 등 부작용만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면 회사는 망가지고, 최 회장의 이사회 장악만 연장되는 상황"이라며 "분쟁 상황을 종결하고, 지배구조 개선이 마무리되면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정관을 개정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김 부회장은 최 회장과의 합의 가능성도 열어놨다. 김 부회장은 "MBK 연합이 이번 주총에서 승리를 거둬도 최 회장은 여전히 2대 주주"라며 "주요주주와 화합을 이루지 못하면 고려아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최 회장과 함께 회사를 이끌어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최 회장과 합의·화해를 위한 어떤 논의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배구조 개선되면 고려아연 기업가치 상승
김 부회장은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눌린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도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고려아연은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멀티플 13~14배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업"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 체제에서 고려아연의 시가총액은 EBITDA 멀티플 9~10배 수준에 머물렀다.김 부회장은 "고려아연이 저평가된 이유는 최 회장이 사내에서 전횡을 휘두를 수 있는 후진적 지배구조 때문이었다"고 꼬집었다. 최 회장이 한눈을 팔지 않고 본업에 집중했다면 주가가 12~15만원 이상 더 높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했다. 그는 "최 회장이 중학교 동창이 운영하는 신생 사모펀드에 출자한 자금과 이그니오 인수에 투입한 비용 등 약 1조원을 본업에 투자했다면 고려아연의 투하자본이익률(ROIC)을 고려했을 때 이런 계산이 나온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고려아연 경영권을 확보한 뒤에도 최 회장이 추진하던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계승해 이어가 고려아연을 제련회사에서 전기차 소재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방침이다. 전기차 케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견디고, 투자를 이어가면 고려아연은 2029년 매출 19조원, EBITDA 2조원을 내는 회사로 거듭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실적과 지배구조가 개선되면 4년 뒤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는 30조원으로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향후 매각 계획도 어느정도 세워놨다. 길게는 10년 뒤 고려아연을 다시 인수할 후보군을 국내 대기업 그룹사로 추렸다. 김 부회장은 "고려아연을 중국에 매각할 계획은 전혀 없다"며 "전기차 소재 사업을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키우고 싶어 하는 국내 주요 대기업이 고려아연을 인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 지배구조 개선의 시발점
시장에선 MBK가 고려아연 투자를 시작으로 행동주의 펀드에 가까운 행보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김 부회장은 "그럴 일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가 MBK의 메인 투자 전략이 되는 건 결코 아니며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을 찾아다니는 방식으로 투자를 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지배구조 개선은 바이아웃 펀드인 MBK가 구사하는 여러 투자 방식 중 하나"라고 했다.MBK에 출자금을 댄 글로벌 주요 출자자(LP)들은 MBK의 이런 새로운 투자 전략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김 부회장은 "글로벌 주요 LP들은 일본에서 지배구조 개선이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경험을 이미 충분히 했다"며 "후진적인 지배구조가 약점인 한국에서 이런 새로운 방식의 바이아웃 투자가 진행된다는 점에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70억달러(약 10조원) 규모를 목표로 6호 블라인드펀드 조성을 준비 중인 MBK는 지난해 11월 기준 50억달러(약 7조원)를 모았다.
김 부회장은 김앤장에서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로 활약하다가 2005년 MBK에 합류했다. 20여년간 한국 자본시장에서 사모펀드(PEF)업계를 이끌어온 그는 일종의 소명의식을 갖고 이번 고려아연 투자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 부회장은 "한국 자본시장이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누군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며 "현역에서 물러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이번 투자가 자본시장의 한 주체로서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종관/차준호 기자 p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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