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08일 10:46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새해가 밝은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국제통화기금은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을 3.3퍼센트, 한국은 2.0퍼센트로 전망합니다. 국내 전문가들은 2퍼센트도 힘들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대외 변수에 더해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난 수십년 동안 불확실성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메뉴였습니다만, 올해 그 강도가 유난히 더합니다. 최근 사회 분위기 때문임을 부인하기 힘듭니다. 이런 시기를 거쳐가는 청년들이 작금의 경험을 훗날 삶에 어떻게 투영할지 궁금해집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젊은이들에게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물어보면 온라인 세상에서 명예와 부를 추구한다는 대답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젊은층의 60퍼센트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나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하며, 이를 ‘명성 있는 직업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패셔니스타, 코미디언, 게이머에 이르기까지 소셜미디어 슈퍼스타는 특정 브랜드를 알리며 엄청난 부를 축적합니다. 미국에서는 젊은층 가운데 4분의 3이 이런 인플루언서의 도움을 받아 소비를 결정합니다.
기업들은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습니다. 특히 소비재 기업들은 인플루언서를 통해 젊은층에 어필합니다. 월마트와 고급 의류업체 보스는 틱톡 스타와 협업하고 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은 유튜버를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인플루언서는 할리우드 셀럽, 팝 스타와 함께 미국 슈퍼볼 광고에 출연하기도 합니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로켓 회사인 블루오리진 홍보에 유튜버를 내세웠습니다. 유튜버들은 독학으로 콘텐츠 제작 기술을 배워 틈새 시장과 소비자를 겨냥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저렴한 고품질 카메라, 비디오 편집 소프트웨어를 구동하는 저렴한 노트북, 극적인 공중 촬영이 가능한 드론이 동원됩니다. 게다가 인공지능은 어지간한 단순반복 작업을 해결해 줍니다. 그러기에 인플루언서가 되고자 하는 이들의 소망이 그저 허황된 것만은 아닙니다.
이런 인플루언서가 되겠다는 대표적인 집단이 Z세대입니다. 1997년과 2012년 사이에 태어나 올해 13세에서 28세가 되는 이들로, 전 세계적으로 약 20억 명, 지구촌 인구 중 4분의 1을 차지합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며 베이비붐 세대와 맞먹습니다. 인도와 나이지리아에서는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보다 훨씬 많습니다. 선진국의 각 세대에는 간단한 서사가 있습니다. 1964년 이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전후의 풍요로움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1965년 이후의 X세대는 그냥 베이비부머와 다르다는 정도입니다. 1981년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얼(M)세대는 2007년 금융위기 쓰나미를 거쳤습니다.
그런데 Z세대는 ‘불안’ 그 자체로 정의됩니다. 조나단 하이트의 책 ‘불안한 세대(The Anxious Generation)’가 대표적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예전 세대보다 관계 형성을 기피하는 편이다, 태어날 때 성 정체성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음주나 성관계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일을 할 가능성도 낮다 등이 그런 내용입니다. 그 원인으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를 듭니다. 이 책의 반향은 꽤 컸습니다. 서구권에서는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제한하고자 합니다. 부모보다 더 암울한 삶을 살 것이라는 우려도 끊이지 않습니다. 주택 마련부터 기후변화 위험까지 걱정해야 합니다. 성격 형성기에 파괴적인 SNS를 몰아보는 둠스크롤링(doomscrolling)과 다른 사람에게는 가능한 기회가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포모(FOMO)에 빠져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린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Z세대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넓게 보면 Z세대의 운명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오히려 괜찮은 편입니다. 우선, 전문가들이 말하는 불안이라는 서사는 전 세계 Z세대의 약 5분의 4를 차지하는 신흥 경제권을 도외시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인도, 케냐의 젊은이들은 성장과 기술 확산 덕분에 부모 세대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소득은 물론이고 건강과 교육 수준도 더 높습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이들에게 정보력과 연결성이라는 희망의 통로입니다. 신흥국 젊은이들이 선진국 젊은이들보다 더 낙관적이라는 유엔 조사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최근 수십 년 동안의 성장 끝에 정체기에 접어든 중국은 좀 다릅니다. 대학 졸업자의 3분의 1 이상이 실업자 운명에 처한 불안한 상태입니다.
선진국도 생각하는 것보다 Z세대의 미래가 밝습니다. 일자리를 가진 Z세대는 베이비부머 못지않게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습니다. 일자리 수요 증가와 함께, 시장과 기업이 기대하는 신기술을 현명하게 습득하고 있다는 것도 작용합니다. 대학생 상당수는 인문학 대신 과학, 공학, 의학 등 실용적인 분야에 몰입합니다. 임금은 위 세대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으며, 청년 실업률은 수십 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미국의 경우 세금과 보조금을 고려한 소득이 X세대와 M세대가 지금의 Z세대 또래였을 때보다 훨씬 많습니다.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을 감안한 주택 구매력은 소득 증가 덕분에 10년 전의 M세대와 거의 같습니다.
이처럼 선진국의 Z세대는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불안 덩어리라고 하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우려할 대상이 아닌 것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신흥 경제권에서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희망의 대상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사회과학과 분석에 뛰어나다는 선진국입니다. 선진국은 전반적으로 뚜렷한 성장 동력이 보이지 않기에 사회적으로 불안이 팽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흥경제권은 그런 세련된 분석과는 다른 세상입니다. 희망적인 것은 선진국 Z세대가 전향적인 사회를 형성하는 주체로 부상한다는 겁니다. 투표권을 가지게 되면서 기후변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 정부가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부의 역할을 중시한다며 세금을 기꺼이 낼 수도 있습니다. 이전 세대와는 달리 밤샘, 폭음, 난잡함을 멀리하는 절제를 발휘할 수도 있는 진지한 무리들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 MZ세대라는 용어가 나타났습니다. 해외에서는 정체불명인 이 용어가 한국에서 유행된 것은 우리 사회 특유의 배경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실상 민주화 이후의 신세대로, 모 셀럽의 책에서 마케팅 트렌드로 언급되며 대중화되었습니다. 서구권이나 우리 사회나 M세대와 Z세대를 형성하는 연령대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M세대는 이제 30대에 접어들거나 40대 중반의 중년으로 진입하는 중이고, Z세대는 10대 중반부터 사회 초년생까지의 연령대로 구성됩니다. 서구권에서는 스마트폰 대중화에 본격적으로 노출된 세대를 Z세대로 정의하며 기술 변화가 성장기에 미치는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성세대가 신세대를 불편하게 바라보며 의도적으로 두 세대를 싸잡아 규정한 측면이 강하고, 기술 변화와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서구권이나 한국이나 공통적인 면은 있습니다. M세대는 대부분 기존 조직의 위계와 시스템에 동화되어 있거나 동화가 진행 중인 세대입니다. 반면 Z세대는 그런 동화와는 아직 거리가 멉니다.
Z세대가 인플루언서를 꿈꾸고, 기업들이 인플루언서와 함께하고자 하는 것은 인플루언서가 상대하는 수십억 명의 시청자 대부분이 젊고, 이들의 소비 성향과 습관이 수십 년 동안 지속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술 혁명의 최첨단에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최적화되어 있는 집단은 Z세대로, 이들이 인플루언서이든 조직의 구성원이든 생산 주체로서, 동시에 소비 주체로서 주력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술 변화에 따른 비즈니스 대응에 고민하는 기업은 미래의 생산과 소비 주체로 부상할 Z세대에 대한 제대로 된 시각과 이에 상응한 대응이 필요합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M세대와 Z세대는 일의 관점에서 확연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M세대는 2007년 이후 이어진 세계 금융위기의 암울한 터널을 거쳤습니다. 그런 과거의 경험 탓에 급여 인상 요구를 두려워합니다. Z세대는 그런 환경에 노출된 적이 없습니다. 더 나은 기회가 생기면 직장을 그만두거나, 일을 천천히 하고 인생을 즐기고자 합니다. M세대는 직장이 특권이라고 생각하고, 상사에게도 공손한 편입니다. Z세대는 직장이 기본적으로 권리라고 믿습니다. 해고되지 않을 만큼의 노력만 하는 ‘조용히 그만두기(quiet quitting)’를 추구합니다. 월요병을 극복한다며 ‘최소한의 일(bare minimum Monday)’만 하기도 합니다. M세대 여성에게는 군림하는 남성으로부터 조직의 통제권을 쟁취하는 ‘걸보스(girl boss)’가 어필합니다. Z세대는 다릅니다. 일은 천천히 하고 자기관리가 우선인 ‘달팽이 걸(snail girl)’이 더 끌립니다.
이런 Z세대를 보며 기업들은 고민이 클 겁니다. 이에 대해서는 진화의 관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텔모 피에바니의 ‘불완전한 존재들(Imperfection: A Natural History)’라는 책에 따르면, 자연사의 모든 것들은 결함과 땜질로 탄생하고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그는 “지구에서 일어난 다섯 번에 걸친 대멸종에서 가장 완전한 생물이 가장 먼저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였던 공룡이 그러했습니다. 현대 조직 사회에서 익숙한 모습입니다. “진화론의 신기원을 연 찰스 다윈이 가장 좋아하는 영어 단어는 재간과 기교, 창의적인 수완을 의미하는 ‘contrivances(컨트라이번시스)’로 그 기반의 개념은 ‘즉흥성’입니다”. 바로 청년의 기질입니다. “자연은 계획을 세우지 않고 방법을 찾아낸다”고 합니다. 역시 청년들이 그러합니다. “완벽함이 있는 곳에는 역사가 없다”고 합니다. 완벽함이란 취업 면접이든 업무 성과이든 조직에 동화된 세대가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Z세대는 여전히 진화가 진행 중인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조직의 권력 주체인 기성세대는 이들을 ‘신속하게 완성할’ 대상으로 여깁니다. 고시 합격을 가문의 영광이자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40. 50년 전의 석고화된 사고로, 층층이 쌓은 책상머리 스펙을 최고로 여기며 청년을 상대합니다. 청년들은 다릅니다. 이들은 중앙집권 체계의 일사불란한 위계가 아닌 네트워크 세계의 다원화된 생태계에 더 능숙합니다. 현재와 미래를 보며 친구를 더 가까이하고, 이질적인 곳으로 모험을 떠나 다른 문화로부터 배우기를 즐깁니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와 가족에 집착하는 기성세대와는 다릅니다. 미디어와 유명인사들은 MZ를 남발하지만, 정작 Z세대는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불쾌하기는 M세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30여년에 걸친 연령대를 기업의 인사·조직 관리나 마케팅 전략 측면에서 한묶음일 수는 없습니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빠지는 것은 청년 세대나 기성세대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세상을 바꾸는 문화 형성의 동력은 청년에게서 나옵니다. 특히 대중음악만큼 문화적 파급력이 큰 것은 없습니다. 과거에 비틀즈와 마이클 잭슨이 그랬듯이, 지금 테일러 스위프트, BTS, 그리고 Z세대의 아이콘 올리버 로드리고 모두 전 세계 청년들을 흔들어댑니다. 청년기에 형성된 문화는 그들이 수십년간 생산과 소비 주체로 나설 비즈니스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스타벅스를 찾는 것은 유별난 커피 맛보다는 문화 때문입니다. 최근 K푸드가 뜨고 있습니다만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이 마냥 좋아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어쩌면 K팝 때문입니다. K팝이 전 세계 청년들 사이에 문화를 형성하고, 이들은 K팝을 좋아하는 나머지 한국 음식을 경험하려는 겁니다. 이런 K팝의 생산과 소비 주체는 청년들입니다.
Z세대는 지금과 같은 기술 혁명기에 인류사에서 최고와 최악을 실시간으로 경험하는 시험대에 놓여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은 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눈치를 봐야 합니다. 세계 인구 중 4분의 1이 이들입니다. 선진국의 프레임으로 이런 방대한 청년 시장을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많습니다. 특히 기업들은 Z세대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신흥 경제권에 주목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으로 경제와 비즈니스가 대혼란을 겪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격변기에 가장 큰 수혜자가 될 집단은 Z세대입니다. 경기 침체는 언제나 그렇듯이 청년들에게 더 큰 타격을 주며, 이런 충격은 평생 사라지기 힘듭니다. 100여년 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히틀러의 전체주의를 낳았던 독일은 훗날 인플레이션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대공황을 겪었던 미국인들은 한때 주식 투자를 꺼렸습니다. 우리에게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의 트라우마가 있습니다만, 다행히 한국의 Z세대는 그런 고통을 겪지 않았습니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는 다행스럽게도 한국을 비켜갔습니다.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Close your eyes)’는 영화와 현실이라는 두 배경으로 얘기가 펼쳐집니다. 영화 속 영화에서 부러울 것 하나 없을 유대인은 중국에 있는 어린 딸을 찾으려 합니다. 현실의 또다른 남자는 영화 속 영화에서 유대인의 부탁으로 딸을 찾아 나선 역할을 했던 배우로 행방불명이 됩니다. 영화 속 영화의 유대인은 마침내 딸을 만나지만, 현실의 남자는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영화 속 영화에 등장하는 딸은 두 노년의 남자에게 변화를 일으킵니다. 한 사람은 편안하게 삶을 완성하면서, 또 한 사람은 완전히 지워졌던 20여년의 기억이 꿈틀대면서 말입니다. 청년이 변화의 동인으로 희망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본 글은 The Economist의 ‘Reasons to be cheerful about Generation Z’와 ‘Generation Z is unprecedently rich’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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