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공” 외치더니 中 알리와 합작…정용진의 속내[안재광의 대기만성's]

입력 2025-01-13 10:15   수정 2025-01-13 10:16




정용진 신세계 회장은 과거 본인 생각을 가감없이 SNS에 올려서 많은 화제가 됐었죠. 그 가운데 ‘멸공’ 발언이 특히 논란이 됐습니다. 멸공은 ‘공산주의를 멸한다’는 뜻의 한자어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공산주의가 중국을 가리키는 것이란 해석 때문에 곤욕을 치렀습니다. 정 회장은 이후에 “멸공은 중국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죠.

하지만 정 회장이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미뤄 짐작이 가능합니다. 신세계 이마트가 중국의 ‘사드 보복’ 탓에 2017년 중국에서 철수한 아픈 기억이 있거든요. 한때 중국에서 매장을 26곳까지 늘렸던 이마트는 당시에 반한 감정과 중국 지방정부의 노골적인 영업 방해 탓에 사업을 이어가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롯데도 이때 중국에서 백화점, 마트, 슈퍼 다 철수했습니다. 한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기업 전반이 보복을 당한 겁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엔 면세점마저 힘든 상황인데요. 이것도 중국 때문입니다. 한때 면세점 매출의 80%가량을 올려줬던 중국인들이 발길을 뚝 끊었습니다.

이만 하면 정 회장이 중국에 좋은 감정이 있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 같은데요.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G마켓이 중국 알리바바그룹과 손잡고 온라인쇼핑 사업을 함께하기로 한 것입니다. G마켓은 이마트가 2021년에 3조4400억원을 주고 미국 이베이로부터 샀는데요. 국내 온라인쇼핑 시장을 평정하겠다는 당초 의도와 다르게 힘도 못 써보고 쿠팡, 네이버에 밀렸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리바바를 끌어들인 정 회장의 속내는 무엇일까요.

◆알리가 사업 주도권 쥐어

이번 합작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선 신세계, 정확히는 이마트는 아폴로코리아란 일종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G마켓 지분 약 80%를 보유 중입니다. 나머지 20% 지분은 미국 이베이가 보유하고 있고요. 알리바바와의 합작은 이 아폴로코리아를 통해 이뤄지는데요. 우선 아폴로코리아가 50, 알리바바의 알리익스프레스가 50의 비율로 출자해서 ‘그랜드오푸스홀딩’이란 이름의 조인트벤처를 세웁니다. 그리고 이 밑으로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코리아를 넣습니다.

이걸 간단히 정리하면 신세계, 알리바바, 이베이 3자가 모여서 G마켓, 알리익스프레스 한국 사업을 함께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신세계가 50만큼 지분을 가지는 게 아니고요. 신세계가 40, 알리바바는 50, 이베이가 10만큼 지분을 가져갑니다. 이렇게 보면 알리바바가 주도권을 가지는 셈이죠.

그럼 실익은 누가 가져갈까요. 알리바바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리바바는 중국 온라인쇼핑 시장을 징동닷컴과 함께 양분해왔죠. 하지만 최근 엄청난 속도로 성장 중인 테무, 중국 법인명은 핀둬둬죠. 테무의 위협 탓에 중국 내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습니다. 작년 3월부터 9월까지 6개월간 알리바바의 중국 내수 플랫폼인 타오바오, T몰의 매출이 총 2123억 위안으로 전년 동기의 2126억 위안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매출 성장이 멈춘 겁니다. 반면에 같은 기간 알리익스프레스 같은 글로벌 커머스 매출 증가율은 31%에 달했습니다. 중국 이외의 해외 e커머스에서 훨씬 큰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여기엔 물론 한국도 포함됩니다. 2023년 초 336만여 명에 불과했던 알리익스프레스 앱의 월간활성이용자 수가 그해 말엔 713만 명으로 두 배 넘게 껑충 뛰었습니다. 배우 마동석을 광고 모델로 쓰고 K베뉴란 이름의 한국 상품 전용관을 별도로 열면서 큰 효과 봤죠. 이후에 이용자 수가 계속 늘어서 작년 8월엔 처음 9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 속도로 계속 간다면 쿠팡도 넘볼 줄 알았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후에 성장이 멈춰서 900만 명에서 더 늘지 못했고요. 작년 말 기준으로 898만 명 수준입니다. 쿠팡이 약 3260만 명가량인데요. 격차가 여전히 엄청나죠.

사실 알리 제품이 싸긴 한데 배송이 너무 늦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신세계와 손을 잡으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신세계의 물류망을 활용하면 되거든요. 신세계는 원래 자기들 창고에서, 자기들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가져다 주는 것을 지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얼마 전 CJ대한통운에 통째로 물류 부문을 맡겼습니다. 신세계와 알리가 함께 온라인쇼핑 사업을 하면 CJ대한통운이 물류 부문을 담당해줄 것이고요. 그럼 알리의 늦은 배송 문제는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개선될 겁니다. 중국 제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이 크게 좋진 않은데요. 유해물질이 검출되거나 짝퉁 제품 적발이 많잖아요. 신세계가 함께 사업을 하면 이런 소비자들의 인식을 불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여기에 G마켓에 입점해서 물건 파는 셀러를 알리가 함께 공유하면 단번에 한국 기업 제품을 늘릴 수도 있습니다.

합작구조도 알리에 이득인데요. 사실 알리익스프레스가 한국에서 G마켓과 동등한 수준의 회사는 아닙니다. 사용자가 많긴 하지만 거래액(GMV)은 많지 않거든요. 온라인쇼핑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때 많이 참조하는 게 거래액이죠. 총 얼마가 거래됐는지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휴대폰 100만원짜리가 1개 팔려도 100만원, 휴대폰 케이스 1만원짜리가 100개 팔려도 100만원입니다. 그런데 수십만원 짜리는 알리에서 잘 안 사잖아요. 대부분 몇천원, 비싸도 몇만원일 겁니다. 반면에 G마켓에선 수백만원짜리 가전이나 여행 상품도 잘 팔립니다. 그만큼 거래액도 크고요.

증권업계에서 추산하는 알리의 거래액은 2023년 기준으로 2조원이 조금 넘습니다. G마켓이 한때 20조원까지도 갔으니까요, G마켓 기업가치가 몇 배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G마켓은 이용자 수가 계속 줄었고 알리는 빠르게 늘었으니까 알리 가치를 조금 더 쳐준다 해도요. G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를 동등하게 비교하긴 힘들죠. 그래서 알리바바가 알리익스프레스 내주고 여기에 현금 3000억원을 더 얹어 준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신세계, 오픈마켓 시장서 나올 듯

신세계는 그럼 무엇을 노리고 알리를 끌어들인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죠. 당연히 알리만 좋은 일 시켜주기 위한 것은 아닐 테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G마켓이 하는 오픈마켓,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고 중간에서 수수료 받는 비즈니스에서 빠져나오겠다는 의도로 해석됩니다.

신세계는 이번 합작으로 G마켓 지분 80을 내어주고 40만큼을 받아왔습니다. 절반이나 지배력이 약해졌습니다. 그 대가로 신세계, 정확히는 이마트는 재무구조가 크게 개선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G마켓을 인수한 뒤에 이마트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나요. 우선 G마켓의 수백억원 적자가 이마트의 지분법 손실로 잡혔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한 해 1600억원의 영업권 상각이란 회계상 손실까지 더해졌습니다. 영업권은 쉽게 말해 G마켓 살 때 얹어준 웃돈을 의미하는데요. 웃돈 주고 산 걸 이마트의 이익에서 일정 부분 제거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알리와 합작으로 G마켓이 자회사에서 떨어져 나가면 이런 회계적 손실도 크게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신세계 입장에선 G마켓이 쿠팡처럼 성장하긴커녕 돈 먹는 ‘애물단지’가 됐는데요. 손실 보고 파는 것도 어렵습니다. 살 때 준 금액인 3조4400억원의 절반에 내놔도 가져갈 곳이 없습니다. 경쟁사인 11번가가 5000억원에 매물로 나와 있는데도 1년 넘게 아무도 안 사고 있습니다. G마켓을 정리하기 위해선 인수자 쪽에 지분 이외에 뭔가 더 큰 인센티브를 줘야 하는 상황인 겁니다. 신세계가 G마켓을 알리에 넘기는 대신에 물류와 셀러 인프라, 여기에 사회적 신뢰란 큰 자본까지 제공한 셈이죠.

신세계가 오픈마켓 사업에서 점차 손을 뗀다면 이 시장은 쿠팡과 네이버, 그리고 알리 같은 C커머스 대결 구도로 갈 가능성이 높고요. 신세계, 롯데 같은 유통 대기업들은 식료품, 패션, 화장품 같은 특정 상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전문몰 형태로 진화할 듯합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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