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돋아난 ‘혹’이 환영받는 경우는 드물다. 주로 외부의 충격이나 감염으로 발생하는 종양은 의학적 관점에서 치료 대상이다. 볼록한 둔덕이 발생한 제품은 불량품 취급을 받는다. ‘혹부리 영감’ 설화에서도 심술궂은 영감은 혹을 주렁주렁 다는 결말을 맞는다.
조각가 김병호(50·사진)는 혹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탐닉의 정원’은 조각 15점을 선보인다. 작품 모서리에는 의도적으로 만든 혹이 달려 있다. 표면이 매끈했다면 기대하기 힘들었을 화려한 난반사가 보는 이를 현혹한다.
작가는 본인의 조각을 ‘문명의 혹’이라고 부른다.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스틸 등 제조업의 부산물이 주요 소재다. 작가는 “대량생산체제를 거부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아름다움을 찾았다”고 말했다.
지하 1층에는 약 7m 길이의 ‘수평 정원’이 놓여 있다. 가로로 뻗은 직선에 돌기가 맺힌 철사 185개가 꽂혀 있다. 고층 건물이 밀집한 도시 전경과 닮은 모습이다. 황금으로 도색한 작품은 현대인의 욕망을 상징한다.
그의 작업에선 현대사회를 향한 찬미와 냉소가 동시에 느껴진다. 기계작업 ‘두 개의 충돌’(2024)이 단적인 예다. 은색과 검은색으로 칠한 두 개의 조각이 서로 맞물려 회전한다. 닿을 듯 닿지 않는다. 문명의 질서에 대한 순응과 저항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룬 상태를 묘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번 신작들은 전문가와 협업 끝에 완성했다. 작가가 아이디어를 도면으로 옮기면 각 소재의 전문가가 조각을 만들어 보낸다. 부품들을 모아 조립하면 작품이 완성된다.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과 비슷하다.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그의 작업도 증식하고 있다. 최근 3년간은 특히 숨 가빴다. 중국 선양과 우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전시를 열었다. 올해 홍콩과 중국 선전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전시는 2월 8일까지.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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