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와 롯데, 수렁에 빠진 이커머스

입력 2025-01-16 06:00   수정 2025-01-16 16:21

신세계와 롯데는 한국 유통의 상징이다. 1969년 신세계백화점이 상공부(지금의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업계 최초 직영백화점 등록을 받으며 국내 유통업의 근대화가 시작됐다. 1970년대 롯데백화점은 1호점(소공점)을 열면서 유통시장에 새롭게 진입했다. 이들은 약 50년간 업태의 변화를 이끌면서 산업을 주도해왔다.

이들이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것은 이커머스 주도권을 뺏기면서다. 쿠팡은 2023년 사상 처음 분기 매출로 이마트(신세계 포함)를 제쳤다. 롯데는 외형 확장에 어려움을 겪으며 쿠팡의 견제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커머스는 유통업계의 신사업으로 꼽혔다. 신세계와 롯데 모두 온라인 사업을 회사의 ‘대전환점’이라 발표하며 공을 들였지만 결국 이들 모두 신사업에 실패했다. 신세계와 롯데의 사업 목표에서 온라인에 대한 계획은 자취를 감췄다.

유통의 전통적 강자들은 온라인 사업을 포기한 것일까.
◆ 철 지난 감각에 온라인 사업 내리막
2020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소개글은 ‘SSG닷컴’이었다. 글자를 누르면 SSG닷컴으로 바로 연결됐다. 당시 정 회장은 인스타그램을 이마트의 주요 홍보 채널로 활용했다. 유행하는 제품을 소개하고 계열사의 신상 제품이 나오면 직접 후기를 전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SSG닷컴은 계정 메인에 걸어둘 만큼 가장 큰 관심사였다.

정 회장은 디지털전환을 그룹의 핵심 과제로 선정하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미래 계획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롯데도 마찬가지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2019년과 2020년 신년사를 통해 디지털전환을 통한 비즈니스 혁신을 촉구했다.

신 회장은 “단순히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업무 일부에 활용하거나 관련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며 “디지털 신기술을 확보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육성해야 한다”고 재차 언급했다. 디지털전환을 ‘생존 전략’이라고 언급했다.


두 회사에 온라인 사업은 그 정도로 중요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쿠팡이 2019년 7조원 규모의 매출을 2023년 31조원까지 키울 동안 신세계와 롯데의 매출은 크게 늘지 않았다.

이마트의 이커머스 매출은 2019년 8442억원에서 2023년 2조8751억원으로 약 3배 늘었다. 2021년 이베이코리아(현재 G마켓)를 인수해 외형을 확장했지만 여전히 경쟁사에 비해 규모가 작다.

롯데쇼핑은 더 참담하다. 롯데쇼핑은 2018년 이커머스 시장 1위를 목표로 약 1400명 규모 조직인 이커머스 사업본부를 신설했다.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홈쇼핑, 롯데하이마트, 롭스, 롯데닷컴 등 8개 계열사의 온라인몰을 전부 통합한 ‘혁신 앱’을 만들기 위한 결정이었다. 2020년 나온 ‘롯데온’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롯데쇼핑의 이커머스 매출은 △2021년 1080억원 △2022년 1131억원 △2023년 1351억원 등으로 제자리걸음이다. 2020년 롯데온 론칭을 위해 약 3조원을 들여 8개 온라인몰을 통합했는데 여전히 투자비 회수도 못 하고 있다. 롯데쇼핑 매출에서 차지하는 이커머스 비중은 1%에 불과하다.
◆ 이유는 복합적…살아날 방법은
증권업계에서는 이들의 이커머스 실패 요인으로 △배송서비스 품질을 개선하지 않았고 △오픈마켓 식으로 접근한 점을 꼽았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배송서비스에 공을 안 들였다”며 “쿠팡이 배송에 투자하는 것을 보고도 이들의 서비스는 매우 취약했다. 고객들의 높아지는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문제는 이미 트렌드가 지난 오픈마켓 관점에서 사업을 확대한 점”이라며 “쿠팡이나 컬리가 직매입 위주로 서비스를 안정화하고 소비자들의 쇼핑 경험을 개선했는데 신세계와 롯데는 오픈마켓 식으로 접근했다. 결국 돈 버는 비즈니스를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같은 기간 코로나 여파로 투자 경쟁에서 밀린 것도 문제가 됐다. 쿠팡과 컬리는 외부 투자를 받으면서 물류에 재투자했고 서비스 품질을 개선했다. 반면 신세계와 롯데는 오프라인 실적이 악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온라인 사업 규모를 키울 여력이 없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후발주자가 이길 방법은 막대한 투자밖에 없지만 이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복합적인 요인으로 이커머스 사업이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들은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2월 알리익스프레스를 운영하는 알리바바인터내셔널과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한다고 밝혔다. 양사의 출자 비율은 5대 5로 동등하며 신세계그룹은 G마켓을 현물 출자하는 방식으로 참여한다.

G마켓은 합작법인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동시에 이마트는 G마켓 실적을 떼어낸다. 증권업계에서는 G마켓이 이마트의 연결 실적에서 빠진 이후 지배순이익이 기존 대비 약 100억~200억원 이상 개선될 수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SSG닷컴의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를 CJ대한통운에 이관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커머스 물류 사업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인다는 취지다. 자체 물류센터를 운영하면 인건비와 운영비를 사용해야 하지만 처리할 수 있는 물량이 2만~3만 개 수준으로 제한적인 탓에 물류센터 운영으로 수익성을 개선하기는 어렵다. 만약 물류센터를 매각하면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롯데쇼핑 역시 ‘이커머스 슬림화’를 진행 중이다. 롯데온은 2월 1일부터 모바일상품권·쿠폰 사업과 관련한 자산, 부채, 영업권 일체를 롯데멤버스에 양도한다. 롯데멤버스는 엘포인트·엘페이 간편결제 서비스 제공 사업자다. 롯데멤버스가 가진 기존 멤버십 사업과 결합해 소비자 범용성을 확대하고 데이터와 마케팅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롯데온은 지난해 10월 식료품(e그로서리) 사업단 조직을 롯데마트·슈퍼로 넘겼고 6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을 진행했다. 롯데쇼핑은 올해 이커머스 구조조정의 강도를 더 높일 가능성이 크다.

반전 카드는 남아 있다. 성숙기에 접어든 이커머스 시장에서도 여전히 성장 속도가 더딘 카테고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신선식품’, 롯데는 ‘배송’ 경쟁력을 키우면 이커머스 시장에서 영향력을 제고할 수 있다.

한 애널리스트는 “신세계는 이커머스 물류 사업을 CJ대한통운에 일임하기로 한 이상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며 “쿠팡급의 물류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다. 다만 지금 속도로는 부족하다. 더 빨리, 더 많은 협업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마트의 상품 경쟁력을 이커머스에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커머스에서 어떻게 신선식품 카테고리를 키울 것인지 고민해야 하고 신선식품 위주로 온라인 독점 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반면 롯데는 2022년 영국 리테일 기업 오카도와 손잡고 자동화 물류센터(CFC)를 건립하기로 한 만큼 신세계와 달리 물류에서 승부수를 봐야 한다. 당시 롯데는 2030년까지 이커머스 물류 사업에 1조원을 투자, 전국에 6개 CFC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CFC를 운영하게 되면 지금보다 판관비를 대폭 축소할 수 있게 된다. 오카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쿠팡과의 물류 경쟁도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투자 타이밍을 놓친 게 사실이지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