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빛난 ‘베테랑 리서치센터·애널리스트’ [2024 하반기 베스트 증권사①]

입력 2025-01-14 06:50  

[커버스토리 : 2024 하반기 베스트 증권사]



2024년 하반기 한국 증시는 대내외 정치·경제 불확실성이 맞물리며 험난한 여정을 걸었다. 미국의 금리인하와 대선, 중국 경제 둔화, 지정학적 갈등 등 외부 변수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12·3 비상계엄’으로 대두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투자자의 신뢰를 크게 흔들었다. 연초 밸류업을 노리던 코스피는 박스권에 갇혔고 개인투자자 사이에서는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되다 못해 ‘국장은 안 된다’는 비관론이 지배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리서치센터와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클수록 투자자에게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종목 선정과 포트폴리오 전략 수립에서 전문적 도움을 주는 것이 그들의 본질적 역할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증권사의 리서치 및 법인영업 부문의 경쟁력은 투자자에게 명확한 정보와 신뢰를 제공하는 핵심 요소로 떠올랐다. 한경비즈니스는 1998년부터 국내 증권사와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베스트 증권사·애널리스트’를 선정하고 있다. 26년에 달하는 이 기록은 한국 증권사의 흥망성쇠는 물론 리서치센터와 법인영업부, 애널리스트 각각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척도이자 자본시장의 변화와 성장기를 그린 기록이다.

이번 ‘2024 하반기 베스트 증권사·애널리스트’에는 리서치와 법인영업의 실제 서비스 수요자인 연기금·자산운용사·공제회·은행·보험·투자자문사의 펀드매니저 1620명이 참여해 신뢰도를 높였다. 조사 이래 최대 규모다.
리서치와 법인의 균형
한국의 대표 리서치 평가로 자리 잡은 한경비즈니스의 ‘2024 하반기 베스트 증권사’ 순위는 KB증권의 독주와 함께 신한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의 강력한 추격, 그리고 중소형사의 치열한 경쟁으로 요약된다.

27개 국내 증권사의 순위를 가르는 이 평가는 리서치와 법인영업의 균형을 기반으로 산출된다. 리서치의 신뢰도와 적시성뿐 아니라 법인영업에서의 고객관리와 매매체결 능력 같은 실질적 역량을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따라서 단일 부문에서의 강점만으로는 상위권을 유지하기 어렵다. 리서치와 법인영업 간 조화로운 전략이 필수적이다. 이번 순위는 27개 증권사가 경쟁한 가운데 리더십을 굳히는 증권사와 추격하는 증권사 간의 뚜렷한 격차를 확인시켰다.



종합 1위 KB증권은 2024년 하반기에도 리서치(12.16점)와 법인영업(12.19점) 부문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이는 단순히 상반기의 상승세를 유지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다지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KB증권은 과거 여러 차례의 합병과 내부 조정으로 “시동이 걸릴 만하면 꺼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최근 몇 년간 이를 극복하며 체계적인 리서치와 영업 역량 강화에 성공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4~5위권에 머물며 중상위권에 자리 잡은 뒤 2023년 하반기부터 본격 시동을 걸었다. 리서치와 법인영업 모두에서 점수를 크게 끌어올리며 첫 종합 2위에 올랐고 상승세를 몰아 다음 평가에서 종합 1위를 차지했다.

특히 2023년 말부터 리서치센터를 이끄는 김동원 리서치본부장의 역할이 돋보였다. 김동원 본부장은 다년간 베스트 애널리스트 부문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베테랑으로 그의 강력한 리더십이 연속 종합 1위 달성에 중요한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평가에서 종합 4위로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으나 반기 만에 2위를 차지하며 맹호의 발톱을 드러냈다. 특히 리서치(11.48점) 부문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했다. 보고서의 정확성과 적시성은 신한투자증권의 가장 큰 강점으로 최근 투자 트렌드인 스몰캡, ESG 부문 등에서 탁월한 분석력을 보이며 투자자 사이에서 높은 신뢰를 얻었다.

NH투자증권은 종합 21.12점으로 3위를 기록, 법인영업(11.01점) 부문에서 강점을 발휘하며 기관투자가와의 밀착형 영업 전략을 통해 안정적인 성과를 유지했다.



선두를 놓치지 않았던 하나증권은 상반기 2위에서 하반기 4위로 크게 밀렸다. 하나증권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종합 1위를 차지하며 업계를 선도했지만 2024년 법인영업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 종합 순위 하락으로 이어졌다. 고객 관리와 매매체결 역량 등 법인영업 부문에서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별도 평가인 베스트 애널리스트 부문에서는 13명을 배출해 27개 증권사 중 최다 기록을 세웠다. 이는 하나증권 리서치센터가 여전히 업계 최고의 전문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메리츠증권은 리서치와 법인영업의 고른 성적을 바탕으로 중위권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특히 법인영업 부문에서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을 제치고 2단계 상승하며 고객관리와 매매체결 능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삼성증권은 종합 순위 6위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성과를 이어갔다. 단, 상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한 차별화된 전략, 특히 법인영업 부문에서 메리츠증권에 밀리며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미래에셋증권은 하반기 종합 순위에서 7위로 한 단계 상승하며 중위권에서의 경쟁력을 입증했다. 리서치 부문에서는 7위를 유지했지만 법인영업 부문에서 지난 상반기보다 높은 점수를 받으며 종합 순위를 한 단계 올렸다. 이는 법인 고객 관리와 매매체결 능력에서의 개선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결과다.

한국투자증권은 하락세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적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리서치는 상반기와 동일한 순위를 유지했으나 법인영업 부문에서 메리츠증권에 크게 밀리며 순위가 하락한 점이 아쉽다. 5~7위 중위권 경쟁에서 각 증권사의 차별화된 강점이 향후 성적 변화를 좌우할 중요한 요인이 될 전망이다.

이번 평가에선 중소형 증권사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SK증권, 현대차증권, 키움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가 톱10에 자리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리서치와 법인영업 부문에서 고른 성과를 보인 증권사들이 순위 변동을 이끌었다. 특히 현대차증권은 종합 6.67점으로 톱10에 첫 진입하며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24년부터 현대차증권을 이끈 배형근 사장의 전폭적 지지와 노근창 리서치센터장의 오랜 노력의 결실로 평가된다.
어려운 증시 속에서 더욱 빛난 베테랑
‘2024 하반기 베스트 애널리스트’ 평가에서는 베테랑 애널리스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총 35개 부문(개인 33개, 팀 2개)에서 최고의 애널리스트를 선정하는 이번 평가는 27개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참여해 우열을 가렸다.


지난 상반기 평가에서는 11명의 신예 애널리스트가 이름을 올리며 세대교체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하반기에는 이 숫자가 단 1명으로 급감했다. 한 명조차도 엄밀히 말하면 다른 부문에서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선정된 베테랑이었다. 지난 상반기 ‘거시경제’ 부문에서 베스트에 오른 하건형(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가 원자재 부문에서 최초를 따냈다.

또 2개 부문에서 1위에 오른 2관왕의 주인공도 4명으로 많았다. 증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경험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베테랑 애널리스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김동원(KB증권), 이기훈(하나증권), 하건형(신한투자증권), 김정욱(메리츠증권)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각 반도체, 엔터테인먼트, 거시경제, 유통 등 각기 다른 산업과 전략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성을 발휘하며 어려운 시장 환경에서도 투자자들에게 명확한 나침반 역할을 해냈다.

탈환의 주인공들도 대거 등장했다. 김홍식(하나증권), 박형우(SK증권), 이기훈(하나증권), 김정욱(메리츠증권), 하인환(KB증권), 김중원(현대차증권) 등이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박형우(SK증권) 애널리스트는 신한에서 SK로 둥지를 옮긴 뒤 스마트·통신장비 부문에서 베스트 타이틀을 탈환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0년 이후 SK증권에서도 첫 베스트 애널리스트다.

이기훈(하나증권)은 미디어·광고 부문에서, 김정욱(메리츠증권)은 유통 부문에서 1위를 탈환하며 2관왕에 올랐다. 김중원(현대차증권)은 글로벌 자산배분 부문에서 1위를 탈환해 현대차증권이 전략적 강자로 부상하는 데 기여했다.

2024년 하반기 평가는 베테랑 애널리스트들이 증시 불확실성 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줬다. 신진 애널리스트의 비중이 줄어든 이유는 경험 부족으로 대외 변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예측의 정확도가 떨어진 탓으로 분석된다. 이는 시장이 안정적 성과와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을 더욱 선호하고 있음을 반영한 결과다.

하우스별로는 하나증권이 13인의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배출해 파워 하우스로 선정됐다. 2위는 신한투자증권(7인), 3위는 KB증권(5인)이다. 현대차증권과 SK증권은 각각 1명의 1위 애널리스트를 배출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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