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알리익스프레스, DH게이트 등 중국계 이커머스 플랫폼만 들여다 봐도 각종 가품이 쏟아진다. 쿠팡, 11번가, 지마켓 등 국내 오픈마켓들 역시 종종 ‘짝퉁 논란’에 시달린다. 인스타그램, 포털사이트 블로그, 카페 등에서도 최상급 짝퉁을 홍보하는 글은 익숙하다.
다만 월마트의 '워킨백'은 기존 짝퉁 제품과 달리 정품인지, 가품인지 긴가민가한 문구로 구매자를 속이는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는 게 특징이다. 일부 온라인 고객 리뷰를 제외하면 월마트 판매 사이트에선 ‘Birkin’(버킨)이라는 단어가 아예 없다. 제조사가 등록한 제품명은 ‘여성용 진짜 가죽 핸드백’(Genuine Leather Handbags Purse for Women). 몰래 파는 위조 제품이 아니라 대놓고 내놓은 복제품이다.
상표권 침해 여부에 대해선 법조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가방 형태를 보편적 디자인으로 인식한다면 저작권 보호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이 이미 시장에 출시된 다른 품목과 유사한 제품을 설계하는 데 있어 어느정도까지는 허용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가방에 에르메스 상표를 붙이는 건 상표권 침해로 간주되지만, 가방 손잡이나 주머니처럼 '기능적 요소'는 저작권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시각이다. 반면 추후에라도 제 3자 판매자나 구매자에 의해 워킨백이 버킨백과 혼동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에르메스가 상표 침해를 주장할 수도 있다.
아직까진 에르메스가 대응하는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에르메스는 디자인 권리를 적극 보호하는 브랜드다. 2011년 버킨백 이미지를 그려 넣은 캔버스 백을 판매한 업체에 소송을 걸었고, 이듬해엔 위조 에르메스 제품을 판 웹사이트 34개를 고소해 1억달러의 손해 배상금을 받아 냈다. 2022년에는 버킨백의 디지털 모방 버전 '메타버킨스‘(Meta Birkins)' NFT를 만든 예술가 메이슨 로스차일드에게 소송을 제기해 13만3000달러를 배상 받았다.
워킨백은 버킨백과 거의 유사한 모양, 크기,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소재도 버킨백처럼 천연 가죽이다. 게다가 버킨백엔 없는 크로스 스트랩이 있어 기능적인 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가격은 100분의 1 수준으로 싼 데 품질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셈. 고가 명품이 상품의 '실제 가치'를 반영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HBSC에 따르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이후 최근까지 사치품의 가격은 평균 54% 올랐다. 코로나19 이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비교적 가격에 덜 민감한 부유층 고객도 가파른 인상을 체감할 정도로 값이 높아졌는데 사실상 품질이 나아졌는가를 따져보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디올백 원가 8만원 논란에서부터 워킨백 사태까지 오면서 고객들이 명품의 가치가 가격과 비례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상징적 가치에 의존하는 재화를 두고 실재적 가격을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그 시장은 끝”이라고 지적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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