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금리가 급등한 후 부동산 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자 건설업계 곳곳에선 "A사가 망하려고 한다더라", "B사는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준비한다더라", "C사는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고려한다더라" 등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크고 작은 기업들의 부도설이 돌고 지방의 중소형 건설사들이 무너져갔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말 시장에서는 익숙한 '파밀리에'란 주택 브랜드를 가진 시공능력평가 58위 신동아건설이 서울회생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습니다.
신동아건설은 1985년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63빌딩'을 지었던 곳입니다. 2010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워크아웃에 돌입한 적이 있는데 워크아웃에서 벗어난 지 약 5년 만에 워크아웃이 아닌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신동아건설의 법정관리로 수분양자들의 걱정이 컸습니다. 이 건설사는 지난해 11월 인천 서구 마전동 '검단신도시 파밀리에 엘리프' 입주자모집공고를 내고 분양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특별공급 51명, 일반공급에 313명이 지원했고 대부분 유형에서 미달이 나와 40여 명을 제외한 320여 명이 당첨자로 전환될 예정이었습니다.
다만 신동아건설은 이 단지의 입주자모집공고를 취소한다고 공지했습니다. 수분양자들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제57조4항에 따라 청약통장 사용 내역이 사라집니다.
신동아건설이 신청한 법정관리는 법원이 주도하는 공식적인 기업회생절차입니다. 파산 위기의 기업이 법원 감독 아래 재정상태 개선, 채무 조정을 도모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법원이 주도하기 때문에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자산과 채권이 동결, 포괄적 금지명령 등 외부 통제가 대거 강화됩니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이 주도적으로 무언가 할 수 없단 얘기입니다.
반면 겉으로 보기엔 법정관리와 비슷한 기업개선작업으로 불리는 워크아웃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채권자들과 함께 재무 구조 개선에 나서는 자율적 협의에 따른 절차입니다. 법정관리와 달리 법정 구속력이 없고 경영활동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면서 기업 재정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경영권이 유지되면서 진행 중인 사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고 기업 정상화에 대한 의지도 담깁니다. 채권단과의 협의를 끌어내야 하는 만큼 기업 스스로 회생 가능성에 무게를 둬야 만 절차 진행이 가능하다는 점도 법정관리랑은 다른 부분입니다.
때문에 워크아웃을 진행하는 경우 성공 사례가 많습니다. 자산과 채권이 동결되는 법정관리와 달리 관계사, 협력사 등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하는 측면이 큽니다. 워크아웃 과정에서 협력 관계 등 신뢰가 커지면서 재무적 안정성뿐 아니라 사업 전반의 신뢰도가 오히려 상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2023년 12월 워크아웃에 들어간 태영건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태영건설은 1년 동안 계열사와 자산 등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했고 '급한 불'은 끈 상황입니다.
구체적으로 태영건설은 지난해 4월 '서산~영덕선 대산~당진 고속도로 3공구' 사업을 따냈고, 경기 광명시 자원회수시설, 경기 포천시 하수관로 정비사업 등도 수주했습니다. 다만 모두 공공이 발주한 사업들이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눈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워크아웃 여파로 분양을 중단했던 경기 의왕시에 있는 '의왕 센트라인 데시앙'은 작년 7월 분양을 재개한 뒤 한 달여 만에 완판에 성공했습니다. 이어 12월 경기 의정부 소재 장암6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의 시공사로 선정되며 정비사업 시장에 성공적으로 복귀했습니다. 민간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태영건설은 워크아웃 신청 당시 채권단에서 제시한 자구안을 모두 이행하고 워크아웃 계획에 따라 착실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비밀 유지 조약 때문에 구체적으로 얘기하긴 어렵지만 지난해 수주 활동과 분양 등은 회사 정상화를 위한 계획에 포함돼 있다고 봐도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영건설이 시장의 신뢰를 얼마나 회복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분양 물량이 나왔습니다. 태영건설은 이날 대구 동구 신천동에 지어지는 '더 팰리스트 데시앙' 모델하우스를 열고 분양 일정에 돌입합니다.
더 팰리스트 데시앙은 대구 동부정류장 후적지 개발사업을 통해 공급되는 단지로 전용면적별 가구 수는 △100㎡ 70가구 △106㎡ 38가구 △109㎡ 38가구 △115㎡A 174가구 △115㎡B 17가구 △115㎡C 16가구 △117㎡A 48가구 △117㎡B 17가구로 조성됩니다. 올해 대구에서 처음으로 모델하우스를 여는 곳으로 희소성이 높은 중대형 면적으로만 구성되고 발코니 확장과 옵션 무상화, 뛰어난 입지, 고급 설계 등이 적용될 예정입니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태영건설은 지난 1년 동안 워크아웃을 통해 부실 사업장 등을 정리해 나가는 등 회사 정상화를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 "만약 대구 사업장이 부실한 곳이었다면 채권단과의 협의에서 이미 정리가 됐을 것이다.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예비 청약자들은 안심해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단지 분양 관계자도 "자율적 협의에 따른 워크아웃은 법정관리와는 천양지차"라면서 "워크아웃을 통해 점점 단단해지는 단지에 주목하는 것도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다만 대구는 '미분양 무덤'이라는 오명이 있는 곳이라 이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대구시가 주택 인허가 물량을 조정하면서 분양 시장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여전히 얼어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이번 대구 사업장이 태영건설이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단지가 될 것"이라면서 "민간 아파트 시장에서 양호한 청약 성적을 낸다면 워크아웃 '조기 졸업'에도 한발 다가가지 않겠느냐"고 평가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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