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 항공사 임원 A씨는 최근 외국 항공기 제조사와 납기 일정 조율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수년 전에 주문했던 항공기를 국내에 들여오는 일정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여행 수요는 회복했지만 항공기 제조사들의 생산 물량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줄었다”며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는 갈수록 낡아가는데 신형 항공기를 언제쯤 받을수 있을지 기약이 없어 고민”이라고 말했다.
항공업계가 항공기 품귀 현상에 몸살을 앓고 있다. 9일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글로벌 항공기 평균 나이(기령)는 14.8년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1990~2024년 평균(13.6년)에서 1년 이상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글로벌 항공기 인도량은 1254대로 2018년(1813대)과 비교해 30.8% 감소했다. 내년 인도량은 1802대로 일부 회복될 전망이지만, 항공업계가 당초에 예상했던 인도량(2293대)에는 미치지 못한다. 항공기가 전반적으로 낡아가고 있음에도 신형 항공기 도입이 더디다는 의미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현재 보잉과 에어버스 등 항공기 제작사에 밀려 있는 신규 항공기 주문은 1만7000여대에 달한다. 이는 역대 최고치로 현재 쌓여 있는 주문을 모두 소화 하는데 14년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2013~2019년)의 평균 주문 소화 기간(6년)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신형 항공기 품귀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다. 항공기 제조사 보잉과 에어버스 등은 팬데믹 기간 중 공장을 폐쇄하고 항공기 제조를 멈췄다. 팬데믹이 끝난 이후 다시 공장 가동이 시작 됐으나, 이번엔 전쟁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러시아로부터 항공기 제조의 필수 원자재인 티타늄 조달 등에 차질이 생겼다. 지난해 9월에는 보잉 근로자들이 임금 동결에 반발해 두달 간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신형 항공기 도입이 늦어지면서 글로벌 항공사는 수익 저하와 비용 증가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팬데믹 이후 해외 여행 수요가 폭발해 비행기 탑승률은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에도 항공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들이 항공기를 추가로 확보 했다면 더 많은 항공권을 판매하며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래된 항공기를 고쳐 쓰면서 유지 보수 비용도 증가했다. 신형 항공기와 비교해 구형 항공기의 연료 소모량도 상대적으로 많다. 항공기를 도입하려는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 하면서 항공기 임대료도 2019년 대비 30% 가량 증가했다.
국내 항공사들은 수년 전에 주문했던 항공기들을 이제야 하나둘 받기 시작했다. 아시아나항공은 2008년 에어버스에 주문했던 A350 30대 중 아직 받지 못한 15대를 2031년 말에야 받을 전망이다. 대한항공도 2019년 주문한 보잉 B787-10을 기존 계획보다 3년이나 늦어진 지난해 7월 처음 받았다. 최근 도입 계약 논의를 시작한 B777-9 등 50대는 2034년에 도입될 예정이다.
저비용항공사(LCC)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제조사가 대형항공사에 먼저 물량을 내줘 LCC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일부 LCC는 취항 계획을 바꾸지 못해 외국에서 중고 항공기를 급하게 사오거나 타사의 전세기까지 빌려 운항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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