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하다 못해 매서운 눈빛을 장착한 멤버들, 폭풍처럼 쏟아내는 묵직하면서도 날카로운 랩, 우주복·뿔·날개·그릴즈와 같은 독특한 비주얼 콘셉트의 연속. 혼을 쏙 빼놓는 이 영상에서 한 멤버는 바리캉을 들고 그대로 자기 머리를 밀어버렸다. 그룹 XG(주린, 치사, 히나타, 하비, 쥬리아, 마야, 코코나)의 '워크 업(WOKE UP)' 뮤직비디오 속 모습이다.
우상이라는 뜻의 아이돌(Idol)은 '예쁘고 사랑스럽다'는 이미지로 동경심을 자극해왔는데, XG는 이와 등을 돌리고 개성 있고 독특한 방식으로 다른 차원의 '아이돌'이 되어가고 있다. 엠 플로(m-flo)의 곡 '프리즘(prism)'을 샘플링한 'IYKYK'에서는 리드미컬한 리듬이 있는 편안한 무드 안에서 아방가르드함을 극대화했고, 가장 최근 발표한 '하울링(HOWLING)'으로는 풍성한 사운드에 늑대 공명 소리를 연상시키는 멤버들의 하울링까지 넣어 강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들을 향해 '압도적이다', '대적할 그룹이 없다', '세계적인 걸그룹이다' 등의 평이 쏟아지고 있다.
'한결같이 좋은 노래. 다소 난해한 비주얼 콘셉트. 진짜 신기한 뮤직비디오.'
이 한 줄의 반응은 2022년 3월 데뷔한 XG가 약 3년간 걸어온 길을 그대로 보여준다. 팀명부터가 'Xtraordinary Girls'의 약자로 비범하고 특별한 소녀들을 뜻한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음악과 퍼포먼스로 자신들만의 길을 가겠다는 각오를 엿볼 수 있다.
XG를 기획하고 제작한 사이먼(SIMON) 엑스갤럭스(XGALX) 대표는 "XG는 어디서 본 적 없는, 특별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대중적이지만 독창적이길 바랐다. '브레이킹 바운더리(breaking boundary)'라는 생각으로 항상 틀을 벗어나려고 했다"고 밝혔다.
삭발 아이디어는 XG를 육성하던 시절인 8년 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었다고 했다. 당시 사이먼 대표는 멤버들과 대화하던 중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전원 삭발하고 데뷔하면 어떠냐'고 물었고, XG는 "너무 좋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작 '때가 왔다'고 느낀 건 데뷔한 지 2년이 지나서였다. 사이먼 대표는 "여성이라고 항상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건 하나의 틀이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도 문화적으로 새로움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코코나가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멤버가 싫어한다면 강요하지 않는데, 제안하니 '너무 좋다'고 하더라. 삭발식을 마치고 코코나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눈물이 났다. '네가 혁신적으로 새로운 미를 보여주게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전했다.
하지만 외적인 신선함보다 더 중요한 두 가지는 좋은 음악과 실력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XG가 그간 발표한 곡들은 숨은 명곡으로 꼽힌다. 실험적인 사운드에 중독성 강한 비트와 리듬으로 독보적인 색깔을 냈다. 곡 작업에는 사이먼 대표가 직접 참여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 달마시안(DMTN) 출신인 그는 이후 작곡가로도 활동한 이력이 있다. K팝 음악 시장을 몸소 경험하며 쌓은 노하우를 XG를 육성할 때부터 8년째 쏟아붓는 중이었다.
사이먼 대표는 "신선함이라는 게 한편으로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대중을 계속 설득해야 한다는 각오는 하고 있었다"면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우선 곡이 좋고, 또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XG의 데뷔를 5년 간 준비했다. 멤버들 모두 수용이 빠르고 하나의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마음이 잘 맞는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들에게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완성도 측면에서는 양보 없이 욕심을 부렸다. 우리나라에 '독기'라는 표현이 있지 않나. 일본에서는 독기보다는 '살기'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인이 목숨을 걸고 한다는 뜻이다. 무대에 올라갔을 때 눈만 봐도 압도하는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장르적 접근 없이 좋은 음악은 그냥 좋은 음악인 것 같다. 기대를 넘어서는 더 좋은 음악과 실력을 선보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XG는 한국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등 거점을 한국에 두고 있지만, 멤버 전원이 일본인으로 구성돼 있다. 사이먼 대표 역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한일 혼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는 "양국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다. K팝 시장은 가장 변화도 빠르고, 완성도도 높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나 역시 그 안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는 음악 산업에서 2, 3위를 다투는 큰 시장"이라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간다는 점. XG 멤버들이 한국어까지 능숙하게 소화하는 이유다. 사이먼 대표의 고민과 집념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한국에서 대학교수로 30년간 재직 중인 모친의 '일본어 발성학' 관련 논문을 읽다가 보컬 강화 포인트를 찾았다고 했다.
사이먼 대표는 "일본어에는 자음이 많이 없어서 성대 근육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시원시원하게 쳐줘야 하는 랩이나 가사에 자음이 많은데 하기 쉽지 않은 것"이라면서 "혀의 위치나 구강 공명 등을 많이 공부했다. 노래를 들었을 때 이들이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게 목표였다. 언어학, 발성학적으로 접근해서 멤버들에게 일본어 노래를 금지하고 무조건 영어 혹은 한국어로 연습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XG의 활동곡 가사는 전부 영어로 이뤄져 있다. K팝 방법론 아래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된 팀이 영어곡을 소화한다는 전략은 글로벌 진출에 용이하게 작용했다. 영어로 유창하게 가사를 내뱉으며 강렬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멤버들을 보면 한국, 일본을 구분 짓는 일은 다소 불필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계획은 제대로 통했다. 해외 팬들이 급증하고 있다. XG는 유럽·아시아·북미 등에서 월드투어를 진행해 총 2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미국 빌보드의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도 진입했다. 오는 4월에는 미국 최대 음악 축제인 '코첼라 밸리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다.
사이먼 대표는 XG 멤버들을 육성할 당시 ▲빌보드 차트 진입 ▲코첼라 입성 ▲ 월드투어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고 했다. 데뷔 3주년을 앞두고 이를 모두 이루게 된 셈이다. 특히 코첼라 무대에 선 K팝 걸그룹은 블랙핑크, 에스파, 르세라핌으로 극소수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믿기지 않는다"며 웃은 사이먼 대표는 "입이 닳도록 '코첼라' 얘기를 했었다. 독보적인 XG만의 무대, 동양인으로서의 프라이드를 보여주고 싶다. 마냥 어떠한 걸 흉내 내는 팀이 아니기 때문에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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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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