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맞나요?" 분통…고장 난 냉장고 바꾸려다 '날벼락' [오세성의 헌집만세]

입력 2025-01-11 07:11   수정 2025-01-1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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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 한 노후 아파트에 거주하는 박모씨는 사용 중이던 냉장고가 고장 나 최근 새 냉장고를 구입했다가 예상치 못하게 5만원을 추가 지출했습니다.

박씨는 엘리베이터를 통해 냉장고를 들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의외의 상황에 맞닥뜨렸습니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별도의 엘리베이터 사용료를 내야 한다며 냉장고 배송을 막은 것입니다. 박씨는 "이사하는 것도 아니고, 물건을 구입해 한 번 오르내리는 것으로 비용을 받냐"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관리규약을 근거로 사용료를 내지 않으면 냉장고를 들일 수 없다는 직원의 엄포와 고층은 사고 우려로 사다리차를 쓰기 어렵다는 판매처의 설명에 결국 5만원을 추가 지출해야 했습니다.

박씨는 "온종일 하는 이사도 아니고 단순히 큰 물건을 옮긴다는 이유로 사용료를 받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마트에서 장을 많이 보거나 많은 쓰레기를 모았다가 한 번에 내다 버리면 그것도 엘리베이터 사용료를 내야 하느냐"고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최근 박씨의 사례와 같이 노후 아파트에서 냉장고, TV, 세탁기 등 대형 가전제품을 옮기는 경우 별도의 엘리베이터 사용료를 받도록 관리규약을 정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노후 아파트, 물건 옮길 때 '엘리베이터 사용료' 부과

관리규약은 아파트 관리 주체인 입주자대표회가 자체적으로 정하는 것이기에 현행법에 위배되지 않는 이상 이를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가전제품 판매처에서 무료로 사다리차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20층 이상 고층의 경우 사다리가 너무 길어져 흔들리거나 차량이 전복될 우려가 있어 이용이 어렵습니다. 고층에서 쓰려면 별도의 대형 사다리차를 구해야 하는데, 비용이 더욱 비싸집니다. 결국 사용료를 내더라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하는 셈입니다.

노후 아파트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사용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사의 경우 10만~20만원, 큰 물품을 옮기는 경우엔 5~10만원 사이로 비용을 책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됐습니다. 과도하게 비용을 받는 것 아니냐 생각할 수 있지만, 아파트에도 사정은 있습니다.

아파트가 오래된 만큼 엘리베이터도 낡아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정밀안전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엘리베이터 운행이 금지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많은 노후 아파트들이 엘리베이터 교체에 나서고 있습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장기수선충당금(장충금)으로 엘리베이터를 교체해야 하는데, 과거에는 이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던 탓에 계획만큼 비용을 걷지 못했습니다.

아파트 관리업계 관계자는 "1990년대만 해도 장충금이 비싸다며 언성을 높이는 주민이 많아 제대로 적립하지 못했다"며 "돈을 쓸 곳은 늘어가는데 곳간은 비어있고, 당장 부과액을 늘리려 해도 반발이 크니 고육지책으로 사용료 받을 곳을 늘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노후 아파트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장충금 고갈로 수입원 늘려야"…신축 아파트도 예외 아냐
국토교통부는 2017년 ㎡당 적정 장충금을 월 628.5원으로 산정하고, 최소 적립기준도 만드는 방안을 추진했습니다. 다만 현재까지도 유야무야 된 상태입니다.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아파트의 평균 장충금 월 부과액은 ㎡당 265원이었습니다.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3만원이 되지 않는 셈입니다. 같은 면적에서 국토부가 2017년 제시한 기준이 7만원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절반도 되질 않습니다.

특히 서울의 경우 ㎡당 173원에 불과했습니다. 전용 84㎡가 2만원도 내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그간 공사비 상승 등을 감안하면 4배 이상 올려야 한다는 관측도 나옵니다.

이는 신축 아파트도 예외가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면 외벽 도색이나 지하 주차장 보수, 엘리베이터 교체 등이 필요한데, 장충금을 제때 쌓지 못하면 지금의 노후 아파트와 똑같은 상황에 부닥치기 때문입니다.

신축 아파트가 향후 지금의 노후 아파트보다 비싼 엘리베이터 사용료를 낼 수도 있습니다. 일부 신축 아파트의 경우 사다리차 사용이 불가능한 탓입니다. 과거 아파트는 실외 승강기인 '곤돌라'가 있었습니다. 옥상에 크레인을 설치하고, 짐이 실린 네모난 승강장치를 끌어올리는 방식입니다. 다만 제대로 고정되지 않는 탓에 승강장치가 흔들려 사고가 잦았고, 결국 사다리차로 대체됐습니다.

하지만 사다리차도 설 곳이 점차 줄고 있습니다. 우선 대부분 신축 아파트가 초고층으로 지어지는 상황에서, 20층 이상 고층 아파트에 사용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조망권을 극대화하기 위해 난간을 투명한 유리로 만든 아파트도 사다리차 사용이 불가합니다. 사다리를 걸치면 유리 난간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엘리베이터 외의 대안이 없는 신축 아파트는 장충금 부족 문제가 현실화했을 때 타격이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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