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 10일 14:51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형제·남매·모자도 회사 경영권 두고 싸우는데요?"
"남남이면 오죽할까요."
신영증권 원국희 명예회장과 재보험사인 코리안리 고(故) 원혁희 명예회장은 같은 원주 원씨 가문이다. 중국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에 파견한 8명의 선비 가운데 한명인 원경(元鏡)의 후손이다.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원혜영·원유철 전 국회의원 등도 같은 종친이다.
2007년. 신영증권과 코리안리는 상호 '백기사(우호 주주) 관계를 형성했다. 오너일가가 같은 가문 출신이라는 점이 계기가 됐다. 하지만 코리안리는 신영증권 지분을 차츰 정리한 반면 신영증권은 코리안리 지분을 최근에 9.99%까지 확보했다. 코리안리 오너가 지분이 20.0%에 머무르는 등 지배력이 단단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만큼 신영증권 행보를 놓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영증권과 원국희 신영증권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은 전날 코리안리 지분 9.99%(1946만6369주)를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2023년 말 코리안리 지분 7.43%(1228만6456주)를 보유한 신영증권은 지난해 11월 25일 코리안리 무상증자 과정에서 신주 360만주를 확보했다. 여기에 300억원가량을 들여 코리안리 주식을 매입해 10%까지 불렸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단순 투자 목적으로 코리안리에서 나온 배당을 바탕으로 주식을 재매입했다"고 설명했다.
신영증권이 코리안리 지분을 매입한 것은 2007년이다. 당시 서울증권(현 유진투자증권)을 놓고 유진그룹을 비롯한 여러 기업이 경영권 인수를 위한 지분 경쟁을 벌인 바 있다. 적대적 인수합병(M&A) 바람이 불면서 신영증권과 코리안리의 동맹이 시작됐다. 두 회사 오너일가 지분이 당시 20%대 초반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지배력이 단단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7년 두 회사는 상호 지분을 매입했다. 코리안리가 신영증권 지분 3.2%, 신영증권은 코리안리 지분 1.3%를 매입했다. 두 회사는 매입 배경을 놓고 단순 투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오너일가가 원씨 종친인 만큼 상호 대주주의 경영권을 방어해주는 '백기사'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코리안리와 특수관계인은 2019년 신영증권 지분을 6.55%까지 늘렸다. 하지만 이후로는 보유지분을 대거 매각해 현재는 3% 미만까지 줄었다. 코리안리는 신영 자산운용의 경우 지분 9.38%를 보유 중이다. 하지만 신영증권은 달랐다. 지분을 꾸준히 매입하면서 코리안리 지분을 2022년 말 6.78%, 2023년 말 7.43%, 지난해 말 9.99%로 차츰 불렸다.
신영증권은 매입 배경에 대해 '단순 투자'라고 밝혔다. 이 증권사와 신영자산운용은 저평가된 가치주를 장기적으로 굴리는 투자 전략을 주로 구사한다. 한국의 최대 재보험사인 코리안리는 이 같은 전략의 적합한 종목이다. 재보험사는 보험사가 계약자와 맺은 원수계약을 인수하는 회사다. ‘보험사의 보험사’로 통한다. 안정적 재보험 실적을 바탕으로 넉넉한 배당을 하고 있다.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배당을 실시하는 데다 배당수익률은 연 5%대로 배당주로 통한다.
하지만 신영증권이 지분을 10%까지 끌어 올리는 만큼 해석도 무성해졌다. 코리안리 오너일가 지분은 20.33%에 머무른다. 반면 국민연금(7.54%) 노르웨이 기관투자가인 스카겐(6.5%) 등이 지분 5%를 넘는다. 신영증권과 국민연금, 스카겐 지분을 합치면 오너일가 보유 지분을 넘어선다. 코리안리는 물론 자사주 지분이 9.3%(1810만7901주)에 달했다. 이 자사주를 우호주주에게 넘기는 형태로 경영권 방어를 할 수는 있다. 신영증권 관계자는 "안정적 곡선을 그리는 배당주에 투자한 것으로 전혀 다른 목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코리안리 관계자도 "신영증권과 코리안리 대주주 일가는 돈독한 관계"라고 했다.
하지만 신영증권이 지분을 더 매입할 경우 코리안리 오너가도 이 같은 행보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보험사 보유지분이 10%를 넘으면 금융당국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신영증권이 이 같은 승인까지 거쳐 코리안리 지분을 더 사들일 경우 단순 투자목적으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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