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2022년 말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AI는 많은 이슈를 몰고 왔습니다. 예를 들어, 챗GPT에 의존해 작성한 대학생 연구과제를 어디까지 인정할 거냐라는 문제부터 AI가 인류를 위협할 것이란 주장과 AI 기술개발 규제론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적지 않았어요.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을 비롯한 우리나라도 ‘AI 기본법’을 제정했고, AI 기술개발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인식도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가 지난 7일부터 나흘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CES는 지난해 세계 AI 기술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올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AI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다가오고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AI 기술에 푹 빠져들어 인류 공통의 과제를 해결해보자며 ‘다이브 인(Dive In)’이란 주제어를 제시하기도 했죠. AI 연산용 핵심 칩이 될 엔비디아의 블랙웰,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대신해주는 AI 에이전트가 어떤 모습일지 상세하게 전해줬어요.
AI가 몰고 올 미래의 변화를 쉽고 빠르게 점쳐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논쟁점을 중심으로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AI 기술 자체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그 변화의 속도를 체감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CES를 통해 공개된 첨단 AI 기술의 현 단계를 4·5면에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이젠 '디지털 전환'에서 'AI 전환'으로
지난해 생글생글 마지막 호 커버스토리는 “세계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큰 도박이 인공지능(AI) 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2025 세계대전망>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기업이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는 가운데 AI 데이터센터에 무려 1조4000억 달러(약 2040조원)가 투자됐습니다. 미국 기업의 5%만이 제품과 서비스에 AI를 활용하고 있으며, 수익을 올리는 AI 스타트업도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투자자들의 열광과 비즈니스 현실 사이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는 거죠.
이미지 인식 기능 관심
이런 의미에서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본격 시험대에 오르는 AI’를 주목하라고 합니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것은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대신 알아서 해주는 AI 에이전트의 등장입니다. 사람이 목표를 정하면 AI 에이전트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데이터를 모으고 필요한 작업을 스스로 결정해 수행합니다. 그동안은 사람이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직접 작업을 했는데요, 이제는 AI 에이전트에 그런 일을 맡기면 됩니다. 앞으로는 또 인간의 언어지능을 모방한 챗GPT 같은 모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지를 인식하는 시각 기반의 공간지능으로 AI가 발전해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전기 먹는 하마’인 AI에 대한 에너지 공급 문제도 기업들이 여러 해법을 강구 중입니다. 이에 따라 더욱 효율적이고 특수한 칩, 전력이 덜 필요한 전문적이고 작은 AI 모델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습니다. CES에서 단연 주목을 끈 엔비디아의 블랙웰 칩이 대표적 예입니다. 이는 AI 연산용 차세대 핵심 칩인데요, AI 데이터센터의 중추적 요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블랙웰 칩의 성능이 기대만큼 나와줘야 하고,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인근 주민 피해의 목소리도 현실에서 넘어야 할 산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요소는 양자컴퓨팅입니다. 양자과학에 기반한 컴퓨팅 기술이 방대한 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분석·처리할 수 있게 되면 AI의 학습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전력 소비 또한 감소하게 됩니다. 유엔은 탄생 100주년을 맞는 양자과학 기술을 주목하며 올해를 ‘국제 양자과학 기술의 해’로 지정했습니다. CES에서도 양자컴퓨팅 분야가 올해 처음 신설됐습니다.
AI에 ‘몰입’하자는 세계
올해 CES는 ‘다이브 인(Dive In)’이란 주제어를 제시했습니다. 이는 깊이 빠져든다는 뜻인데요, 한 단어로 ‘몰입’ 정도가 될 겁니다. 여기엔 AI 기술을 파고들어(다이브 인)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풀어보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AI 기술로 모든 걸 ‘연결(connect)’하고, 인류의 공통 문제를 ‘해결(solve)’하며, 가능성을 ‘발견(discover)’하자는 겁니다. AI 기술을 이용한 본격적 혁신을 주문하는 것이죠.
기업 비즈니스 현장은 이미 이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중후장대 산업, 유통, 미용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디지털화가 가속화하는 흐름을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X)’이라 부릅니다. 이를 통해 기업의 생산·근무 현장은 원격으로 서로 연결되고, 온라인쇼핑도 대면 쇼핑 이상으로 편리해지면서 기업의 생산성과 수익성이 크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CES는 이제 ‘AI 전환(AI Transformation, AX)’으로 나아가자고 합니다. 쉽게 말해 모든 산업에서 AI를 적극 활용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나 로봇산업과 같은 하드웨어에 AI를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게 바로 자율주행이고, 인간처럼 판단해 작업을 수행하는 AI 로봇이 되는 겁니다. 이제는 AX란 단어를 모르면 안 되는 세상이 될 것 같아요. CES는 또 AI 기술을 이용해 현실 세계를 모방한 가상공간을 만들고, 거기서 기업이 여러 연구개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분야의 신기술도 선보였습니다.
2. 자신이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친구들과 공유해보자.
3. 디지털 전환이 각 산업과 우리 주변 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알아보자.
성큼 다가온 미래 보여준 CES에 '환호'
올해 CES는 기조연설을 담당한 인사부터 화제였습니다. 작년엔 기조연설자 5명 가운데 4명이 유통·화장품·조선업체 최고경영자(CEO)였습니다. 올해는 바로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 AI 비즈니스 모델 혁신가로 통하는 줄리 스위트 액센추어 회장이 기조연설자로 나왔습니다. AI에 더욱 빠져들어야 한다는 메시지 같아 보였습니다. 특히 젠슨 황은 로봇산업이 대중화하는 순간이 다가왔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어요.
헬스케어 관심 폭발
올해 CES의 가장 큰 특징은 AI 기술이 현실 세계와 만나 어떻게 인간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 것입니다. 생성형 AI 자체가 주목받은 작년과는 다른 양상이죠. 이런 모습은 CES 혁신상 총 362개 가운데 헬스케어 분야가 44개를 수상한 데서도 확인됩니다. 순수 AI 기술 쪽은 이보다 적은 41개의 혁신상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바이오닉엠은 전기모터와 AI 센서를 결합한 ‘바이오레그’라는 의족을 선보였습니다. 자연스러운 걸음에 의족 사용에 따른 통증을 줄여준 제품으로 최고혁신상을 받았죠. 한양대 연구팀이 개발한 이명 디지털 치료기도 최고혁신상을 수상했습니다. AI가 만든 입체음향과 촉각 피드백으로 이명을 완화하는 장치입니다. 대만 기업 페이스하트는 스마트 거울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면 AI가 심박수·혈압·산소포화도 등을 체크하고, 심장질환도 90% 확률로 1분 내에 찾아낸다고 합니다.
AI 기술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분야는 가전·IT를 중심으로 한 AI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AI홈 플랫폼이 탑재된 스크린 가전제품을 공개했습니다. 제품의 터치스크린을 조작해 삼성 AI홈 플랫폼에 연결된 가전제품들을 원격 제어합니다. 비스포크 냉장고에 9인치짜리 터치스크린을, 세탁기엔 7인치짜리 스크린을 달았습니다. 삼성은 또 3D(3차원) 전용 안경을 쓰지 않고 3D 경험을 할 수 있는 게이밍 모니터도 출품했습니다. LG전자의 ‘스마트 인스타뷰 냉장고’는 보관 중인 식품의 종류와 양을 체크해 알려줍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등 인기
산업 연관 효과가 더 넓은 기술 분야로 들어가볼까요? 가장 관심을 끈 분야가 바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입니다. 이는 현실 세계와 비슷한 쌍둥이 세상을 디지털로 만든 뒤 여기에서 공장 생산 라인의 고장을 예측하고, 질병을 연구하거나 수술 치료법을 찾고, 자동차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지구나 천체를 대상으로 삼으면 기후변화, 우주탐사까지 미리 시뮬레이션해볼 수 있어요. 엔비디아의 지구 기후 예측 플랫폼 ‘어스 2’는 태풍 발생 가능성과 경로를 알려줍니다. 테슬라는 자율주행 시스템의 고도화를 위해 디지털 트윈을 활용했습니다. 현대자동차도 전기차를 디지털 트윈 세상으로 옮겨 배터리 수명을 예측하는 실험을 했다는군요.
사람의 신체 구조와 비슷하게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로봇은 카메라, 촉각 센서, 마이크 등을 활용해 주변을 인식하고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줍니다. 중국 위슨로보틱스의 ‘플라이어봇’은 실리콘이나 고무 같은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해 사람의 근육을 흉내 낸 소프트 근육 로봇을 출품했습니다. 그래서 움직임이 훨씬 자연스럽고 부드럽죠. 치매 환자를 돕는 ‘제니’는 미국 톰봇이 개발한 반려동물 모양의 로봇입니다. 환자의 정신적 안정뿐 아니라 건강 상태도 체크해줍니다.
모빌리티 쪽에선 LG전자 전시관에 관람객이 많이 몰렸습니다. AI가 카메라와 센서를 이용해 운전자와 차량의 내부 공간을 감지하고 분석하는 것은 물론, 교통사고도 예방해주는 기술을 선보였죠. 운전자의 표정을 인식해 기쁨·보통·짜증·화남 등의 기분을 디스플레이에 나타내면 운전자가 그 상황을 다시 한번 인식해 사고를 막는 식입니다.
2. 한때 로봇 제조 기업을 육성하다 매각한 글로벌 기업도 있다. 로봇산업이 각광받는 이유를 알아보자.
3. ‘디지털 트윈’ 기술을 이용해 어떤 생활적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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