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40%에 달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정치권은 물론 여론조사 업계도 들썩였다. 친야(親野) 성향 지지자들 등 사이에선 해당 여론조사 업체가 과거 여권에서 출마하려고 했다든지, 설문 내용이나 응답률 등을 문제삼았다. 이후 유사한 흐름이 전혀 다른 조사 방식의 여론조사에서 포착되면서 논란은 잠잠해지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여론조사와 관련해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이의신청을 하면서, 여론조사 기준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반발이 나온다.
뜻밖의 결과에 놀란 일각에서는 현경보 KOPRA 대표가 '우평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력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부 단체는 "현 대표가 과거 새누리당과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보 출마를 시도한 적이 있는 인물"이라고 주장하며 그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제주도가 고향이다. 제주도에서 출마 권유가 있어서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런데 당적을 갖은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현 대표는 조사에 문제는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저도 그만큼 나올 줄 몰랐다"고 강조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그런 논리로 따지면 대부분 여론조사가 다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여론조사 업체들은 어떻게든 정치권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진보계 핵심 인물 중 하나인 방송인 김어준씨의 중학교 동창이며, 김씨의 제안으로 여론조사업계에 발을 들인 것으로 익히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행정관 출신인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도 있다. 과거 본인이 여론조사업체를 운영하다 여론조사 꽃 기획 등에 관여한 박시영 '주식회사 박시영' 대표도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며 현재 민주당 정치혁신위원회 위원이다.
조사 업계에서도 현 대표를 포함해 이들 조사업체 대표들 등의 이력에 대해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별개의 사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직무 정지된 대통령 지지율을 실시하는 것도 이상한 데, '윤 대통령 체포 영장에 대한 불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을 강제 연행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언급한 중앙선관위 전산시스템의 해킹 및 부정선거 가능성에 대한 의혹 해소를 위해 선관위 시스템에 대한 공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등 질문에서 나타난 표현이 객관성이 없다는 비판이다.
친여(親與) 성향 누리꾼들은 과거 김어준씨가 대표로 있는 꽃에서 2022년 12월에 실시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당시 법무부 장관)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소환했다. 당시 꽃은 1~3번 질문에서 정당 지지도, 국정 운영 평가 등을 묻고, 4~9번 질문에선 모두 한 전 대표에 관해 물었다. 개인 호감도, 답변 태도, 정치인 자질, 김의겸 전 민주당 의원과 더탐사 관계자 등이 제기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과 관련해 허위사실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와 10억 손배소를 제기한 것이 법무부 장관으로서 적절성을 묻는 질문이 포함됐다. 당시 이를 두고 "한동훈 스토킹식 질문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8년 MBC가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한 조사 결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신뢰도가 77.5%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재소환됐다.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어느 방송사의 여론조사를 보고 내 나라 국민들을 탓해야 하는지 가짜 여론조사를 탓해야 하는지 한심한 세상이 됐다"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조사들은 법적인 문제를 따지기가 어렵다. 관련 법상 여론조사 심의 대상은 '선거 관련 질문'에 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문 문항은 여론조사 업체가 짜는 게 아니라 의뢰한 쪽에서 제시하는 것이다. 평론계 대표적인 인물인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도 조사 설문 문항들에 문제 제기를 했다가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그 조사를 의뢰하는 쪽에서 설문 만들어서 보냈을 것"이라면서 "동의할 수 없는 설문 방식은 양쪽 다 마찬가지"라며 사과했다.
김어준씨의 꽃도 RDD 방식와 전화조사원(CATI) 방식을 각각 발표해왔다. 최근에는 ARS 기반 조사는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그의 방송에선 ARS만 쓰는 리얼미터 조사 결과를 계속 인용하고 있다. 리얼미터 조사는 줄곧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10%포인트가량 앞선다. 데일리안/펜앤드마이크가 의뢰하는 여론조사공정, 뉴스핌이 의뢰하는 미디어리서치, 스트레이트뉴스가 의뢰하는 조원씨앤아이 등도 모두 ARS를 사용한다. 그리고 모두 이들 조사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당정 지지율 상승세는 모두 감지된다.
한 조사업계 관계자는 "조사 방법이 진짜 문제면 선관위에서 대부분 여론조사업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면서 "모든 여론조사는 정도의 편향성이 있고, ARS는 여론을 보는 여러 방법 중 방법론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건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2023년 한국행정연구원 간행물에서 "지난 대선을 앞두고 치러졌던 여론조사에서 후보자 득표율을 예측하는 데 있어 CATI 방식에 비해 ARS 방식이 상대적으로 더 정확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는 ARS 조사 방식이 편향적이라는 일반 통념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결과"라면서 "ARS가 CATI보다 항상 우월한 조사 방식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동시에 항상 열등한 조사 방식이라고 폄하할 수도 없다"고 언급했다.
오히려 여론조사업계에서는 "무선 RDD를 이용한 ARS 방식으로는 매우 높은 수준"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긍정적인 놀라움은 아니고 규명될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본부장은 "리얼미터는 유선 전화까지 추가해서 겨우 응답률을 채운다"며 "문항의 워딩도 상당히 긴데 ARS로 이 정도 문항은 제대로 소화가 어렵다. 그런 부분에서 의문이 제기된다"고 밝혔다. RDD 기반 ARS 방식은 응답률을 높이기 위해 유선과 무선 전화 조사를 함께 쓰는데, 해당 여론조사는 무선만 100%로 실시했다.
김 본부장은 "무응답이 거의 안 나왔다는 것이 전체 유권자를 대표하지는 않는 단적인 지표"라면서 "ARS 특성이 그렇지만, 소위 정치적 고관여층이 조사에 더 많이 참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해당 여론조사에서는 윤 대통령 긍정 평가율은 40%, 부정 평가율은 60%, 없음은 1%였다. 소수점 반올림 결과로, 합산하면 100%를 넘긴다. 통상적으로 여론조사에서는 모름이나 무응답이 3~5%가 나오는 편이다.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반발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의 사전 검토를 공표하는데, 추가 규제가 있다는 것은 여론을 살피는 조사 업계를 위축시키는 일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조사업체 관계자는 "사전 규제라니 말도 안 된다"며 "이미 중앙선관위 심의를 받고 공표를 하고, 사후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으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충분히 있다"고 반발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여론조사라는 것은 주관적 판단이 있을 수 있다"면서 "현안과 관련된 조사에서 대표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심각하지만, 사회과학 영역에서 사후적으로 논쟁하고 책임을 지워야할 부분을 규제 강화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날을 세웠다.
CATI 방식만으로 조사를 실시하는 한국갤럽이 7~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4명에게 물은 결과, 탄핵 찬성론은 64%, 반대론은 32%로 집계됐다. 탄핵소추안 가결 직전과 비교하면 11%포인트가 찬성에서 반대로 선회했다. 사실상 윤 대통령의 지지율과 같은 해당 설문조사에서 여론이 급반전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12월 3주차 대비 10%포인트 올라 34%, 민주당은 같은 기간 12%포인트 급락해 36%를 기록해 접전으로 나타났다. 양당 지지율은 계엄 전으로 '리셋'됐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오차범위 내긴 하지만 계엄 전보다 높아졌다.
역시 CATI 방식인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직전 조사인 12월 3주차 대비 6%포인트 오른 32%로 집계됐다. 약 4개월 전인 8월 2주차(32%) 이후 최고치다. 같은 기간 민주당 지지율은 3%포인트 내린 36%였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이용해 파면해야 한다'는 62%, '탄핵을 기각해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33%였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란 전체 전수조사가 아닌 일부를 보는 것인 만큼, 포용력이 필요하다고 입은 모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부 여론조사가 튀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양극화가 심해지다 보니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 여론조사가 있으면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기사에 언급된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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