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새해가 밝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예전과 사뭇 다르다. 계엄과 탄핵 사태로 정국은 불안하고, 경제도 암울하기 짝이 없다. 희망과 기대보다 스산하고 쓸쓸한 한탄 소리가 넘쳐난다. 우리말 ‘을씨년스럽다’라는 표현이 이보다 잘 어울릴 수 없다. 날씨나 분위기가 몹시 황량해 스산하고 쓸쓸한 기운이 있다는 뜻이다. 주로 날씨에 쓰던 말인데, 요즘은 주위를 둘러싼 상황에 빗대거나, 가난한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데도 사용한다.
이로써 대외적으로 일본의 속국이 돼 우리 민족에겐 치욕으로 남은 해가 됐다. 비통한 민족의 울분을 당시 황성신문 주필로 있던 장지연은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란 제목의 글로 전했다. ‘이날에 목놓아 크게 우노라’란 뜻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몹시 쓸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을사년스럽다’고 했고, 이 말이 형태를 바꿔 지금의 ‘을씨년스럽다’가 됐다는 게 요지다. ‘뱀 사(巳)’ 자의 중국어 발음이 시[si]라서 ‘을사>을시>을씨’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다.
을씨년스럽다는 이런 어원 논란과 별개로 우리말 파생어와 관련한 문법적 측면도 들여다볼 만하다. 접미사 ‘-스럽다’와 ‘-답다’의 용법과 관련해서다. 우리말에서 앞말에 붙어 어떤 속성이 있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에는 ‘-스럽다’와 ‘-답다’가 있다. 두 말의 용법에는 미세한 듯하지만 큰 차이가 있다. 이들을 구별 짓는 것은 ‘어떤 자격이나 정도에 실제로 다다랐는지’의 여부다. 가령 어린이에게 “너 참 어른스럽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너 참 어른답구나”라고 하면 어색하다. 이는 ‘-스럽다’가 실제로는 ‘어떤 자격이나 정도에 이르지 못했지만’ 그런 성질이나 특성이 있음을 나타낼 때 쓰인다는 것을 뜻한다.
‘-스럽다’는 ‘평화스럽다, 복스럽다, 사랑스럽다, 걱정스럽다, 자랑스럽다, 영광스럽다, 고민스럽다, 고생스럽다, 자연스럽다, 다행스럽다’ 등 무수한 우리말 파생어를 낳았다. 그런데 이런 말들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의미자질이 하나 있다. 어근(말뿌리) 자리에 주로 추상적인 말이 온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답다’는 구체적 대상이 올 때 자연스럽다. ‘사내답다, 공무원답다, 선생님답다, 너답다, 국가대표선수답다’ 같은 게 그런 예다. ‘-답다’가 만드는 파생어에도 공통적 의미자질이 있다. 앞에 오는 말(어근)의 긍정적 속성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말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비통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말로 ‘을사년+답다’보다 ‘을사년+스럽다’가 결합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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