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관장하는 헌법재판소가 최근 잇따라 정쟁의 중심에 서고 있어 우려가 제기된다. 발단에는 여야의 신경전도 있겠지만,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등 헌재의 정치적인 언어가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헌법을 수호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헌재가 정치 중립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상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헌재의 천재현 공보관의 발언을 놓고 여권에서 헌재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공보관은 국가 기관의 입장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가장 먼저 논란에 불을 붙인 건 지난 7일 나온 "여야를 떠나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발언이다. 탄핵 심판의 편파성 논란에 대한 반박 차원으로 나온 발언이었는데, 오히려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일 '대통령 탄핵 절차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에서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헌재의 말을 듣고 매우 경악스러웠다. 헌법재판관은 국민이 아닌 헌법을 바라보고 가야 하는 곳인데, 그건 국민의 눈치를 보겠다는 것과 대동소이하다"며 "민주당이 추천한 다수 헌법재판관의 부화뇌동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천 공보관의 "헌재는 독립적 심판 기관으로 심판정 밖에서 이뤄지는 여론전에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는 발언도 헌재의 언어라기보다는 정치권의 언어 같다는 평가를 낳았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해당 발언 이후 헌재 존재의 실효성을 지적하면서 "아무리 헌재가 여론심판 성격이 강하더라도 노골적"이라며 "굳이 저런 발언들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박수영 의원도 같은 날 천 공보관을 향해 "공무원인가, 정치인인가. 천 공보관의 발언은 문제가 많다. 헌재는 헌법과 법률만 보고 가야 할 기관이다. 국민만 보고 갈 곳은 헌재가 아니라 국회"라며 "천 공보관의 발언은 헌재가 헌법과 법률이 아니라 여론으로 재판하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발언을 또 다시 한다면, 징계와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헌법재판관이 정치 논란에 휩싸인 사례도 있다. 김형두 헌법재판관은 국회의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기 하루 전인 지난 13일 민간 변호사 단체 행사에 참석해 축사를 했는데, 이 자리에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있었던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서 의원은 민주당 지도부 소속이며, 김 재판관과 서 의원이 웃으면서 담소하는 사진도 공개됐다.
이에 이종배 서울시의원은 지난해 말 서울중앙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하며 "헌법재판관이 공식적인 국가기관 행사가 아닌 민간 변호사 단체 행사에 참석해 축사까지 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고, 탄핵 가결이 유력한 상황에서 야당 소속 중진 서 의원이 헌법재판관이 축사하는 행사에 참석한 것도 매우 이례적"이라며 "탄핵 심판 청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헌재가 국회 탄핵소추단 측에게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를 철회하라고 권유했다는 논란도 결코 건강한 사례는 아니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 측 대리인은 지난 3일 열린 2차 변론준비기일에서 내란죄 형법 위반 사유 철회와 관련해 "재판부께서 저희에게 권유하신 바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 파장이 일고 있다. 헌재는 내란죄 철회를 권유한 적이 없다고 부인한 상태다.
이에 주진우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은 지난 8일 "(사실관계를 떠나) 적어도 '권유' 발언을 한 변호사 본인은 내란죄를 빼는 것이 재판부의 의중이자 권유라고 느꼈다는 뜻이다.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며 "4월 18일 재판관 임기 만료 전에 선고하려고 안달복달하는 것이 뻔히 보이니, 탄핵소추단 측이 재판부 권유로 느낀 것"이라고 공정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여권에서는 헌재 무용론이 일면서 폐지해야 한다는 강도 높은 주장도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4일 페이스북에서 "박근혜 탄핵 때 엉터리 정치 재판한 헌법 재판관들을 법조인으로 보지 않는다"며 "박근혜 탄핵 때처럼 또 집단광기에 떠밀려 엉터리 판결하면 헌재 무용론이 확산하면서 다음 개헌 때 헌재 폐지 절차를 밟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 홍 시장은 차기 대권주자 중 하나다.
헌법학자인 이호선 국민대 법과대 학장은 헌법재판관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과연 헌재가 헌법 수호 기관답게 헌법의 참 본질과 정신, 그 원리로 돌아가 대한민국의 긴 미래를 위해 공정한 심판을 내릴 것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헌재의 결정은 헌법의 최후의 수호자로서 저항권을 갖는 국민이 승복할 수 없게 되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헌법재판관들에게 있게 된다"고 공정성을 당부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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