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한인은 미국에서 오랜 기간 ‘언더독’(약자)이었다. 유대인처럼 소수지만 사회 지도층에 포진하지도 못했고 흑인처럼 인종차별에 맞서 똘똘 뭉쳐 있지도 않았다. 1992년 4월 29일 터진 LA 흑인 폭동은 한인들이 ‘한국계’로서 정치적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는 걸 자각하게 한 기폭제였다. 원래 흑·백 갈등에서 시작된 폭동이 한·흑 갈등으로 번졌는데 미국 경찰이 한인 보호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다.
지금은 한인사회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다. 재미동포만 260만 명에 달해 정치권이 무시하기 어려워졌다. 현재 한국계 연방의회 의원만 5명이다. 지난해 11월 연방의회 선거에서 앤디 김이 사상 처음 상원의원이 됐고 4명은 하원에 입성했다. 이 중 미셸 스틸 박 의원은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주한 미국대사 후보로 거론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주한 미국대사 성 김, 형제지간으로 각각 보건부 차관보와 국무부 법률자문을 지낸 하워드 고(고경주)와 해럴드 고(고홍주)도 한국계다. 경제계에선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와 뉴욕증시 상장사 쿠팡의 김범석 의장, 피스컬노트 창업자 팀 황이 유명하다. 연예계에선 ‘미나리’로 주목받은 배우 겸 감독 스티븐 연, ‘파친코’ 작가 이민진이 잘 알려져 있다.
2005년 미 의회는 한인의 미국 이민이 시작된 1월 13일을 ‘미주 한인의 날’로 제정했다. 2세, 3세, 4세 등 세대가 거듭되면서 한국말은 서툴지만 여전히 한국계임을 잊지 않는 재미 한인이 많다. 혈맹인 한국과 미국을 잇는 튼튼한 가교가 바로 이들이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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