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하나로 300조 벌었대"…라면 파는 회사까지 뛰어들었다

입력 2025-01-10 18:03   수정 2025-01-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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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식품 등 전통 제조업종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신약 개발에 속속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기존 바이오텍을 인수하거나 바이오 계열사를 신설하면서다. 제조업 중심의 사업 구조에 한계를 느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고부가가치 신약 개발에 뛰어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이 서울아산병원 교수진과 협력해 세운 신약 개발 자회사 AMC사이언스는 동물실험 단계 후보물질을 복수로 확보했다. 항암제, 희소질환 치료제 등을 개발 중이며 중장기적으로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는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기반 신약 개발에 뛰어들었다. 오너 3세인 전병우 상무가 글로벌 학회 등에 참석하며 사업을 챙기고 있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개발하는 삼성 계열사 삼성바이오에피스도 올해 신약 개발 회사로 탈바꿈한다. 유전자 치료제와 항체약물접합체(ADC) 후보물질 임상을 시작하기 위해 연말 2~3개 임상시험계획서(IND)를 허가당국에 제출할 계획이다.
'신약 잭팟' 땐 수십조 이익 조선·라면회사도 바이오 베팅
영업이익률 제조업의 10배…대기업 "바이오 안 할 이유가 없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 중에 바이오 진출을 고려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임원 인사가 있을 때마다 주요 계열사에서 어떤 바이오 사업군을 추가해야 할지 궁금해하는 문의가 주기적으로 올 정도입니다.”

바이오 투자업계에 20년 넘게 몸담은 관계자의 말이다. 한때 제약·바이오 사업은 ‘대기업의 무덤’으로 불렸다. 이제는 배 만드는 회사도, 라면 파는 회사도 부가가치가 높은 바이오 사업에서 미래 가치를 찾고 있다.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바이오 사업만큼 중장기적으로 고부가가치를 향유할 먹거리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美 애브비, 약 하나로 300조원 벌어

10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2003년 출시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가 특허 만료 직전인 2022년까지 기록한 누적 매출은 2190억달러(약 323조원)에 달한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 애브비는 휴미라 하나만으로 20년간 매년 10조원 이상을 벌어들인 셈이다. 신약개발엔 10년 가까이 걸리고, 수천억원의 비용이 든다. 하지만 블록버스터(연매출 1조원 이상 의약품) 반열에 오르면 기업이 벌어들이는 가치는 수백 배로 불어난다. 게다가 그 가치는 특허로 20여 년간 계속해서 보장된다. 기존 제조업 중심 사업 모델에 한계를 느낀 중견·대기업이 너도나도 바이오 사업에 뛰어드는 이유다.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통계분석시스템의 ‘산업별 부가가치율’ 통계에 따르면 의약은 63.6%로 조선(27.8%), 철강(25.3%), 석유화학(25.2%) 등 기존 제조업을 압도한다. 영업이익률도 20~50%로 6% 안팎인 제조업보다 월등히 높다.
○연말 신약 글로벌 임상 시작하는 삼성

HD한국조선해양은 서울아산병원이라는 인프라를 활용해 바이오 사업에 뛰어들었다. 서울아산병원 산하 연구조직으로 2023년 출범한 AMC사이언스는 단백체 분석을 전공한 김경곤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등이 중심이 돼 다양한 연구를 했다. 병원이 보유한 대규모 임상 데이터도 활용했다. HD한국조선해양은 AMC사이언스가 발굴한 후보물질을 상업화 단계에 올려놓기 위해 자회사로 편입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추가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며 현재 두 자릿수 규모인 AMC사이언스 인력을 충원할 것으로 전해졌다. 산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조선 업황이 좋다고 하지만 또 언제 꺾일지 모르는 일”이라며 “HD한국조선해양은 서울아산병원을 활용해 글로벌 제약사와의 기술수출(LO) 협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2011년 의약품 위탁생산업체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세워 바이오에 진출한 삼성도 신약개발에 도전장을 냈다.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진행 중인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프로젝트는 4개, 유전자 치료제 프로젝트는 3개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프로젝트별로 올해 1~2개가 임상에 들어갈 계획”이라며 “기술수출 없이 임상 3상까지 독자 개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양, 한화도 바이오 ‘눈독’
AMC사이언스가 서울아산병원을, 삼성이 제조 및 공정 역량을 통해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면 삼양라운드스퀘어는 먹거리 역량을 활용해 신약개발에 나섰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지난해 미래R&D전략센터 산하에 노화연구센터 등을 별도 조직으로 세우고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대사질환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한화그룹은 1년 전 바이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업에 진출해 다시 바이오산업에 진입했다. 2016년 바이오 사업에서 손을 뗀 지 7년 만이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바이오는 여러 산업 분야에서 융합이 가능한 만큼 자금력 있는 기업이 먹거리로 선택하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성공 확률이 2~3%에 불과한 신약개발 현실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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